기념일을 대하는 두 가지 자세
한 장씩 넘기는 일상
5월은 첫날 근로자의 날을 시작으로해서 마지막 날 바다의 날까지 거의 날마다 어떤 명칭이 붙은 기념일이다.
우선 내가 알고 있는 날만해도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처님오신 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5ᆞ18민주화운동기념일, 부부의 날, 성년의 날 등이다.
그래서 직장인이라면 꿀맛같은 한차례 연휴도 즐길 수 있는 달이기도 하다.
나는 무슨 일이건, 날이건 의미 붙이기를 좋아한다.
아버지의 영향이다.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들 우리 사남매 서너 명은 되던 일가붙이까지 건사하며 살아야했던 엄마는 그저 치열한 생활인이셨다.
영화도, 노래도, 꽃놀이도 별로 즐기지 않으셨다(or 못하셨다).
한량 기질이 다분했던 아버지 대신 꿋꿋하게 가정을 지켰다.
어린이 날이면 우리에게 짜장면과 전기구이 통닭을 사주신 분도 아버지였다.
서울 다녀오신 기념, 첫눈 온 기념, 전축 산 기념, 생신 기념, 월급탄 기념...
아버지는 온갖 것에 다 기념을 붙이셨다.
요즘 같으면 아주 연애를 잘 하셨을 것 같다.
우리로서는 그저 신나는 일이었다.
결혼을 하고 보니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기념일을 기념하는 인간과 기념일을 묵념하는 인간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라는 것도 터득했다.
기념일을 기념하는 인간은 삶이 훨씬 풍요롭다.
인간을 인간이게 한다.
지금의 내가 이나마 씩씩하게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사실 엄마의 힘이다.
우리 엄마는 마을에서 알아주는 부잣집 셋째 딸이었는데 그저 체면과 허울만 있는 가난한 양반가문으로 시집을 오셨다.
그때부터 엄마는 '굳세어라 금순아' 의 대열에 들어섰다.
작은 체구였지만 한평생 대단한 에너지로 사셨다.
그런 엄마의 DNA를 내가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그럼에도 엄마보다 아버지를 더 자주 기억한다.
사람은 누구나일상의 삶에서 건져올린 한 장의 장면을 추억하기 때문이다.
기념일을 기념해야 하는 이유다.
나는 기념일을 기념하는 인간이고 환경에 적응한 인간인고로 어버이 날을 기념하여 몸소, 손수 운동화 한켤레를 샀다.
무조건, 틈 날 때마다 걷기를 하고 있는 나는 요새 운동화 컬렉션을 할까 생각 중이다.
윤흥길의 <아홉 결레 구두로 남은 사내>나 <섹스&시티>의 캐리가 목숨거는 구두처럼 나도 운동화로 칼을 함 세워볼까 고려하고 있다.
멀리 있는 아들이 맛있는 밥 사먹으라고 돈을 보내왔다.
나는 운동화 사는 걸로 눙치고 남편에겐 나머지 얼마를 줄랬더니 아들이 밥 사먹으라 했다고 밥 먹어야 한단다.
그래서 순전히 남편의 관점에서 몸에 좋은 밥을 사먹었다.
채소를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곳에서.
과식해서 밤 8시도 넘어서 학교운동장을 열두 바퀴나 돌았다.
이래서 요즘 외식이가 싫다.
본전 생각 땜에 번번이 과식이의 유혹에 넘어가서.
여튼 맘에 드는 운동화 하나 건졌다.
어버이날 만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