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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숙 Oct 14. 2020

수인번호3612

2020.10.14.수

어젯밤,  두 달여 만에 시조 수업을 갔다. 겨우겨우 단시조 네 편을 써갔는데 다행히 무난한 합평으로 넘어간다. 무난하다면 그나마 괜찮은 것이다. 모처럼 머리를 썼더니 새벽에 두어시간 일어났다가 오전 내처 잤다. 보통은 비몽사몽 남편이 혼자 아침 먹고 설거지를 하는 달그락 소리를 듣곤 하는데 오늘은 그것도 없이 푹 잤다.



오전에 바쁘게 움직여야 할일 없이 가끔은 늦잠을 자도 되는 지금의 이 생활이 좋다. 그런데 돈은 안된다. 늦잠도 자고 돈도 되는 생활은 이생에서는 내몫이 아닌가보다. 그래도 별 불만은 없다. 아니 행복하다. 새벽부터 부지런히 움직여 돈이 되는 생활이 앞에 주어진다면 거절할 용기는...솔직하게 말하자면, 없다. 내 깜냥이 거기까지니까 신은 내 앞에 그런 유혹을 걸쳐놓지 않은 지도 모른다.

아무튼 지금의 내 생활에 별다른 불만은 없지만 늦게 시작한 시조쓰기는 애가 탄다. 심쿵하는 시조를 쓰고 싶다는 욕심은 비워내기가 어렵다.

새로 냈다고 부쳐온 시조집이 책상 위에 쌓여있다. 부지런히 읽을 참이다.


안 그런  시침 떼도 수상한 두근거림

늦게 배운 도둑질 닫힌 문 앞 기웃대다

치명적 유혹에 그만, 걸려들고 말았어요


말의 빗장 풀어서 오랜 허기 달래고파

세상의 책장 넘기며 더듬는 삶의 지문

날마다 수인번호인 양 3612* 달고 살아요

* 시조의 형식인 3장6구12음보에서 따옴


               <수인번호3612>, 김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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