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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숙 Oct 15. 2020

하루키, 하루키

2020.10 15.목

나이가 든다고 해서 성격이나 성향이 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서 생각은 변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문학동네>라는 거대권력이 사전 판권을 사들여 무라카미 하루키의 몸값을 높혀주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당연히 하루키의 책도 읽지 않았다. 삼 년전쯤 거의 전설이 되다시피한 <노르웨이의 숲>을 읽은 게 다였다. 그 작품도 내 느낌은 '그렇구나!'가 아니고 '그래서?'였다.  올초에 독서모임에서 그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다뤘다. 그것도 그의 작품을 읽어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긴 것이 아니라 장르의 구색을 맞추느라 책을 선정했다는 게 맞겠다. 자료를 준비하다가 충격을 받았다. 그가 쓰고 번역한 책이 구백 권이 넘는다는 사실이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도 좋았다. 하루키가 노벨상을 받는다면 그의 능력보다는 하루키를 좋아하는 독자들의 노력일 거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하루키의 책은 독자들이 많이 사서 읽는다는 말이다. 비로소 그에게 열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 많은 책을 쓰고 번역해온 그의 한결같은 자세에 매료되었다.

알려진대로 그는 철저하게 자기관리를 하는 사람이다. 삼십 년 넘게 혼자 마라톤을 하고 글쓰는 시간과 분량도 거의 정확하다고 한다.

얼마전엔  하루키의 수필집을 중고로 사놨다. 아주 가끔 한 꼭지씩 읽고 있다.

현역에서 물러나면 어슬렁어슬렁 도서관에 가서 하루키의 소설 읽기에 도전해볼 참이다. 무릎이 튀어나온 골덴바지에 좀 오래된 스웨터를 입고 머리 희끗희끗한 할머니가 도서관 창가에서 하루키를 읽고 있는 모습이라니. 내가 생각해도 그림이 정말 멋지다(푸하!). 골덴바지 하나를 사서 지금부터 줄기차게 입어야 하나,어쩌나. 나의 문제점은 이거다. 너무 디테일에 신경을 쓴다는 거. 하하!


뛰는 하루키는 인터넷캡쳐

오늘의 3시 글쓰기는 사실 하루키 이야기가 아니었다. 책상에서 일을 하다가 창밖을 내다보니 라이딩을 나서는 남편이 보였다. 그도 하루키과다. 규칙적이다. 하다못해 하루 너댓 번 - 나는 너댓  번으로 퉁치지만 남편은 정확한 횟수가 있을 터이다 - 먹는 간식도 차례가 있다. 미숫가루, 과일, 우유, 쥬스, 견과류, 한과, 고구마나 감자, 떡 같은 걸 삼시 세끼 외에 먹는데 절대 순서를 바꾸지 않는다.

점심을 먹고 잠시 낮잠 - 정확하게 30분 - 을 자고 나면 자전거를  탄다. 세 시간 정도.

자전거를 끌고 나가는 남편을 보니 하루키가 생각이 나서 하루키로 글을 시작해 버렸다.


아침부터 컴퓨터로 일을 하고 있었는데 남편이 등산가방을 고쳐야 하니 시장엘 가서 가방도 고치고 수제비를 사먹자고 했다. 운전하기 싫은데 이참에 바람이라도 쉘까 싶어 따라나갔다가 가방고치는 값, 수제비값 다 내가 냈다. 주차료도.

나도 요즘 껌을 씹으며 계단을 올라가지 못하는 나이라 집을 나서며 마스크 챙겼어?에 이어 지갑도 챙겼어?, 를 물어봐야 하는 데 깜빡했다.(마스크 안 챙겨서 다시 들어갔다 나왔음.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고 고백함!)

남의 하루키는 멋있어 보이는데 내 하루키는 왜 이 모양인지 모르겠다.



내년 여름쯤 시조집을 낼 계획이여서 작품들을 한곳에 모으는 중이다. 들고 다니면서 부지런히 들여다볼 참이다. 어제 밤부터 오늘 아침까지 중견 시인의 새 시조집을 읽었는데 함량이 많이 떨어진 듯 해서 안타까웠다. 무슨 일이든 일정한 수준을 유지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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