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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숙 Oct 22. 2020

레베카

2020.10.22.목

어느 해 평일, 학교에서 느닷없이 단축수업을 하고 우리들을 풀어주었다. 요즘 같으면 법이니, 학부모 등쌀에 어림없는 일이겠지만 그 시절엔 한일 축구전이 열려도 단축 수업을 한 적이 있었다.
해가 바로 머리 위에 있는데 집으로 갈 수는 없었다. 자주 오지 않는 기회였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반경 킬로미터 안에 개봉관이 네 개나 있었다. 재개봉관까지 합치면 여섯이였다.
아무튼 그날 세 곳의 개봉관에서  세 편의 영화를 보았다. 두 편은 기억 나지는 않지만 다 보고 났을 때는 제법 어두워져 있었고 지금도 생각나는 한 편은 찰튼 헤스턴과 소피아 로렌이 주연한 <엘시드>였다. 아마 라스트 씬의 애절함 때문에 기억하고 있는 듯 하다.


왕년의 실력을 되살려 그저께에 이어 오늘도 영화 한 편을 보았다. 넷플릭스에 어제 올라온 따끈따끈한 영화다.
<레베카>
학창시절 소설로 처음 만났다. 사춘기 소녀에게 몽롱하고 우울한 남자주인공이 얼마나 멋있게 보였는지 한동안 가슴이 쿵쿵거렸다.
한참 지나서야 영화가 있다는 걸 알았다.1940년에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만들어 이듬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했다. 로렌스 올리비에, 존 폰테인이 주연했다.
오늘 넷플릭스에서 본 영화보다 나는 1940년에 만든 원작에 훨씬 감정이입이 잘된다. 스릴러라는 장르를 감안하면 2020년 작품은 살짝 로맨틱에 기대 있다. 그리고 댄버스부인은 절벽에서 투신하는 것보다. 맨덜리 저택에서 불길에 휩싸이는 결말이 훨씬 설득력이 있어보인다.

영화로 세상읽기, 인생읽기를 좋아하지만 영화나 문학이 별로인 남자를 만나 살다보니 영화보는 것, 소설을 읽는 것은 늘 뒤로 밀리고 만다.
한 주에 두 편의 영화를 몰입해서 볼 기회는 잘 없다. 학창시절, 단축수업을 하던 때로 돌아간 것 같다. 살림을, 먹고 살기 위해 주어지는 일을,  잠시 접고 누리는  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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