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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숙 May 25. 2016

놀이하는 동물

몸으로 하는 독서

인간은 호모루덴스, 즉 놀이하는 동물이란다.

모든 문명은 놀이 속에서 생겨나고 발전해간다고 한다.

내게 있어서도 놀이는 즐거움이다.

그런데 이나마 멀리 여행을 하고 사진 찍는 놀이를 하게 된 것은 '도전과 응전'의 산물이다.


나는 놀이를 즐기셨던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초등학생 시절, 나는 놀이의 선수였다.

그 무렵의 계집아이들이 흔히 하는 공기놀이, 고무줄 놀이는 나를 따라올 아이들이 없었다.

중고등학생 시절부터는 음악과 영화와 문학에 푹 빠져지냈다.

결혼을 하고 보니 영화감상이 취미라던 남자는 주인공이 옷만 갈아입고 나와도 누군지 구별을 하지 못했다.

소설을 읽는 나에게 철학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소설은 한낱 거짓말에 불과하다고 철학책을 읽으라고 구박을 해댔다.

황당한 결혼생활을 하게 되리라는 불길한 조짐이 보였지만 지금까지 찢어지지 않고 살아온 것은 엄마를 닮았기 때문이다.

자그마한 체구였던 엄마는 세상을 겁내지 않고 사셨다.

내게 다가오는 일들을 피하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엄마가 보여준 삶의 자세가 은연 중 내게 전수된 탓일 게다.

두 분 다 너무 일찍 돌아가신 것은 아직도 용서가 안되지만 두 분의 좋은 점을 물려주셔서 많이 감사하다.

그럼에도 아이들을 키워내느라 내 놀이는 뒷전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집을 떠나고나자 나는 전쟁을 불사했다.

일 년에 두어 차례 먼 나들이, 사진찍기, 글쓰기, 강의는 내 전리품이다.


이태리 여행 중, 사람들을 명품가죽제품샵에 풀어놓으니 먹이를 발견한 하이에나가 되었다.

눈들이 먹이감을 향해 빛을 발하였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의 두 남자, 남편과 아들을 위해 잠시 기웃거렸지만 곧 마음을 접었다.

마음을 당기는 것도 없는데다 값이 너무 비쌌다.

나는 곧 다른 놀이감을 찾았다.

다른 사람들이 열심히 쇼핑을 하는 동안 나도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나는 역시 놀이하는 인간이 맞나보다.

이태리 경제에는 별 이바지를 못했겠지만 문명은 조금은 발전했을라나?

아니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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