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 숟가락 추억 한 젓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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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한 숟가락 추억 한 젓가락
아주 오래 전 중학교 1학년 때, 병원집 딸과 친하게 지낸 적이 있었다.
반 배치고사에서 그애는 전교 2등, 나는 8등을 했다.
그래서 한 반이 되었는데 성적순으로 그애가 실장, 내가 부실장을 했다.
우린 아주 가깝게 지냈다.
학교에서 매일 보는데도 하루가 멀다하고 편지를 주고 받고, 서너 걸음이면 가서 얘기 할 수 있지만 간첩 접선하듯 둘째 시간 마치고 음악실에서 잠깐 봐, 따위의 쪽지를 건네기도 했다.
똑같은 앨범, 필통, 책받침을 가졌고, 책표지도 같은 것을 입혔다.
그애는 아버지가 외국여행에서 사온 엽서라며 나눠 주기도 했다.
엽서 속에 있던 사진, 석양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던 영국국회의사당을 경이롭게 들여다보았던 기억이 난다.
역시 아버지 것이라며 사진집을 보여준 적도 있다.
《인간성지》라는 제목이었던 것 같다.
사람들을 실루엣처럼 찍은 흑백사진집이었다.
내가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된 것같다.
점심시간이면 살짝 근처 계산성당에 가서 둘이 우정이 변치않게 해달라고 기도도 했다.
어느 날, 일요일이었다.
전화로 자기 집에 잠깐 오라고 해서 갔더니 작은 꾸러미를 내밀었다.
따뜻했다.
"내가 구운 거야. 집에 가서 먹어."
집에 와서 펼쳐봤더니 햄구이였다.
그 당시는 소세지도 귀한 시절이었다.
난 그 때 그것이 햄인지도 몰랐다.
평생 떨어지지 말자던 우리의 약속은 그애가 서울로 이사를 가면서 끝이 났다.
아주 시끌벅쩍한 사춘기를 보내서 집 안에서 걱정이 많단다며 어느 친구가 슬쩍 일러 주었다.
세월이 흘러 십여 년 전 부산 모 대학에 교수로 있다는 풍문이 들렸다.
부산 가는 길에 한 번 찾아가볼까 생각이 들었지만 인연이라면 우연히 만나는 것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아주 가끔 혼자서 햄구이로 밥을 먹을 때면 어쩔수 없이 그애를 떠올리곤 한다.
도대체 얼마만큼의 세월이 흐른 건가.
아득한 옛날일이지만 엊그제 일인 양 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유치찬란의 극치였지만 그것 또한 십 대에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주어진 시간을 사는 것이 인생이라면 그때그때 해야할 일을 하며 살아야 후회가 적을 것 같다.
혼자 먹는 점심밥.
뜨거운 쌀밥에 반찬은 달랑 햄 구이 하나다.
맛이 제대로 든 열무물김치라도 냉장고에서 꺼낼까 싶었지만 내 추억 속에 그것은 없다.
온전히 추억으로 먹는 나만을 위한 식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