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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숙 May 27. 2016

불러오기 할까요?

몸으로 하는 독서

나는 책 읽기를 좋아한다.

고등학생 시절의  나를 기억하는 친구들은 수업시간에 교과서 안에 문고판 책을 끼워놓고 읽은 것까지 잊어버리지도 않고 있다가 가끔 전과를 들춰내곤 한다.

그때로부터 한참 더 걸어온 지금도 책 읽기는 여전하다.

집안일을 밀쳐두고 소파에 깊숙이 앉아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어둠이 옆구리까지 차올라 있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가슴밑바닥에서부터 까닭모를 슬픔이 솟구치곤 한다.

아마 책 속  세상에서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서 부딪히게 되는 두려움이나 머뭇거림의 감정일 터이다.


세상은 배울 것이 무궁무진한 책이다.

그러므로 여행은 몸으로 하는 독서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만큼 여행도 빼놓을 수 없는 내 삶의 즐거움이다.

매일 비우고자 애를 쓰지만 그래도 쌓이고 마는 생활의 찌꺼기의 무게에 내 마음이 운신하기 힘들 즈음에 이르면 어쩔 수 없이 가방을 꾸린다.

일박이일의 짧은 일정이라도 기어이 길 위에 서곤 한다.


내가 학교도 들어가기 전, 엄마는 부산에쌀가게를 크게 하셨다.

바로 앞에 큰 시장이 있었고 영도 다리를 건너면 국제시장이었다.

야트막한 산동네를 내려와서 시장에 가려면 로터리를 건너야했다.

사람들은 건널목을 두고 직선코스로 길을 건너다가 순경에게 붙잡히곤 했다.

순경은 로터리 안에 얼기설기 줄은 쳐서 무단횡단한 사람들을 잠시동안 가둬놓곤 했다.

지금 생각하니 웃기는 장면이다.

매일 단속하는 것이 아니니 재수없으면 걸리는 것이다.

줄 안에 서 있는 어른들이라니.

어린 나의 눈에도 그게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인구 2만5천 명의 대마도는 그 시절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다.

완전 육십년대식 풍경이었다.

거리를 지나다보니 엄마가 하시던 쌀가게의 문을 단 가게가 여기도 있었다.

나무테두리에 양철을 입힌 양철문이었는데 도장문이라고 불렀던 것 같다.

 짝씩 홈에 끼워 옆으로 밀어서 가게문을 여닫고 했다.

우리 남매는 아직 어렸고 아버지는 바깥일로 분주했으므로 문을 여닫는 것도 체구가 작은 엄마의 몫이었다.

여름 어느날, 비가 며칠동안 계속해서 왔다.

산동네 아래에 위치해 있던 우리 집이 물에 잠길 위기에 처했다.

젊은 아버지와 엄마는 쌀가마니를 들어서 방 안으로 옮겼다.

두 분이서 수십가마니를 들어옮기느라 정신이 없었을텐데 오빠와 나는 방 안으로 옮겨진 쌀가마니 위를 뛰어다니며 신이났다.


여행은 이렇듯 불러오기를 가능하게 한다.

물이 잠기는 가게에서 쌀가마니를 옮기느라 땀에 젖어 기진한 아버지, 엄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제 우리 가마니 위에서 쌀이랑 자는 거야?"

조잘거리던 어린 계집아이는 어느새 머리 히끗한 모습으로 아버지가 살아보지 못한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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