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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숙 May 29. 2016

벌새를 소망하며

한 장씩 넘기는 일상

오랫동안 가부장의 제도 속에 살아온 우리 사회가 여성이 힘을 가지면서 초래되는 저항이 만만찮아 보인다.

소수의 '힘있는' 여성에게는 침묵하면서 다수의 '힘없는'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도를 넘고 있다.

여성성의 근간은 모성이다. 모성은 생명이다. 여성이 존중받아야 하는 이유다.

나는 엄마가, 아내가, 주부가, 아줌마가 행복한 사회가 그래도 조금은 더 살기가 나은 사회라고 믿는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다.

모든 건강한 에너지는 사실 여자들에게서 나온다.

그래서 그들을 행복하게 하는 일은 하고 싶었다.

여성대학에 <맛있는 책>  강좌를 열었는데 프랑스 자수, 궁중요리에 밀려 인원수급이 안돼 폐강위기에 몰렸다.

말도 안되는 현상이다.

인문학은 사람을 사람이게 하는 학문이고 그 근간에 '책' 이라는 매체가 있다.

주위에서 나의 이런 뜻에 공감하고 몇분이 발벗고 나서서 도와주었다.

 

첫 시간에 나는 아내나 엄마나 사회적인 직함을 모두 떼고 12강을 진행할 동안만큼은 온전히 '나 자신'에 집중하자고 운을 뗐다.

좋아하는 간식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고, 눈치보지 말고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하고, 마음껏 웃자고 했다.

20분짜리 <행복의 기술>강의로 시작했다.

다섯 가지 소제목으로 나누어 다가갔다.

생각을 바꿔라, 나를 사랑하라, 염려하지 마라, 지금 행복하라, 행복을 연습하라.

사소한 것, 작은 것, 지나치기 쉬운 것이 바로 우리를 행복으로 인도하는 징검다리가 되는 것이다.

 

오래 전에 읽은 책에 이런 내용의 글이 있었다.

초원에 불이 났다. 호랑이, 사자, 코끼리, 기린, 얼룩말 같은 큰 동물들은 일제히 불을 피해 도망을 갔다. 그런데 벌새 한 마리가 진화에 나섰다. 이름이 벌새이니 크기가 짐작이 간다. 새 중에서 가장 작아 벌새라는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벌새는 그 조그만 입으로 강물을 물고 와서 초원을 태우는 불길 위에 끼얹었다. 큰 짐승들은 그 모습을 보고 벌새를 비웃었다.

"그런다고 불을 끌 수 있을 것 같니?" 그러자 벌새는 대답을 한다.

"그건 모르지. 나로서는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어."

 

지금 우리 사회의 이런저런 병리현상은 '빵'으로만 치유되지 않는다. 제대로, 정정당당하게 공급되지 못하는 빵으로 인해 청년들이나 사회소외 계층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이지만 빵만으로는 근본적인 허기를 달랠 수 없다. 애써 외면하고 싶지만 그래도 들리는, 사회면을 장식하는 우울한 기사들을 접하면서 벌새의 이야기가 떠오른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나 싶어서  뒤로 물러앉지 말 일이다. 내가 행복하면 내 주위에 그런 사람들이 모이게 된다.

그리하여 몇 명의 행복한 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들로 인해 또다른 몇 명이 행복할 수 있다면 사회는 내가 서 있는 자리부터 밝아질 것이다.

나는 그런 의미있는 진동 내지는 파장을 소망한다. 꿈 같은 소리라고, 현실을 보라고 말할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벌새의 날갯짓을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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