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대열에 들어섰지만 여전히 문구점 가기를 좋아한다. 어린 학생들 사이에 섞여서 연필을 고르고 수첩을 뒤적거리기도 한다. 며칠 전 문구용품 박스를 열어보니 크고 작은 수첩이 한 가득이었다. 조만간 방출할 셈인데 요즘은 거의 다 손전화기 메모장을 쓰는터라 공짜로 준대도 가져갈 이들이 있을런지 모르겠다.
이젠 문구점도 멀리해야 할 장소가 되었다.
오늘은 십오 년 넘게 써온 필통과 사진 한 장 찍는 것으로 이별식을 했다. 아들이 대학 일학년 때 호주 워킹을 보냈는데 절차와 수속을 도와준 유학원에서 준, 누빔 천으로 만든 작은 필통이다(맨오른쪽). 가볍고 크기도 적당하여 오래 썼는데 그 아들의 딸래미가 갖고 놀다가 지퍼를 뿌려뜨렸다.
낡아서 그만 써야지 하고 작년에 가죽으로 만든 빨간 필통을 새로 사서 쓰고 있었지만 추억이 담긴 거라 쉽게 버리지 못했다.
빨간 필통은 정말 작다. 가는 펜 두 자루, 연필 두 자루를 넣으면 꽉 찬다. 부엉이가 달린 연필은 체코에 갔을 때, 프라하의 중앙광장 작은 가게에서 샀다. 모두 나눠주고 하나 남은 걸 아껴가며 쓰고 있다.
가운데 천으로 만든 필통은 손바느질 하는 친구가 만들어 준 것이다. 주로 집에 있을 때 쓴다.
글을 쓰다보면 제목에 고심을 한다. 다른 글도 그렇다. 사실 제목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내가 존경하는 시조시인은 제목을 담백하게 단다. <주민등록증>, <모자>, 이런 식이다. 명사형으로 툭 내던지듯 제목을 달면서도 작품은 정말 아이들 말로 '심쿵'한다.
나도 요즘엔 제목에 너무 목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 제목은 담백하게 <필통>이다. 내용은 '심쿵'에 미치지 못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