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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숙 Jan 03. 2021

자기만의 방

2021.1.3.일

한바탕 전쟁같은 날들을 보냈다.

아들네 가족이 저희 집으로 가고 다시 집은 고요해졌다.

며칠 전 넷플릭스에서 보던 미니시리즈를 이어서 보고 있다.

여자는 오로지 명문 가문에 시집을 가기 위해 사활을 걸던 시절의 이야기다. 내 취향은 아닌데 겨울로 들면서 시작된 처진 기분이 좀체 회복되지 않아서 눈이 번쩍 뜨이는 화려한 화면에 마음이 끌렸다. 이런저런 스토리가 있지만 결국은 사랑이야기이다.



그런 시절에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을 가지라는 글을 썼다. 그런 의식을 가진 여자가 세상을 살아가기에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짐작하기도 어렵다.

그럼 백 년이 지난 지금은 달라졌을까? 남자들은 여자들의 목소리가 너무 크다고 난리를 치지만 나는 여전히 여자들이 차별받는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남자들의 의식은 백 년 전에 비해 얼마나 달라졌을까, 에 의문이 든다.


내 손녀가 살아야 하는 앞으로의 세상은 여자와 남자가 어울려서 살아가기가 좀더 자연스러워질까? 미심쩍지만 그래도 꿈을 꾼다.

날씨가 추워서 집안에만 있는 아기는 에너지가 넘쳐서 어젯밤 열 두 시가 넘도록 잠을 자지 않았다. 남편은 아홉 시 전에 취침 모드에 드는 새나라의 어른이이고, 아들 내외는 내일이면 갈텐데 싶어서 내가 손주랑 씨름을 했다. 그림책을 열 권도 더 떼고, 스티거 붙이는 놀이도 하고 블럭 쌓기도 했다. 그러다가 맨마지막엔 갖고 놀던 미니어쳐를 작은 통에 눕히고 종이로 이불을 만들어 덮었다. 이럴 땐 글쓰는 할미라 유리하다. 스토리텔링은 아기와 놀 땐 아주 좋은 기술이다. "아기도, 물고기도 이젠 코~ 잘 시간이야."

아기는 제 집으로 돌아가고 잠자리에 든 이 녀석들만 남았다. 설날이나 돼야 올텐데 그 때까지 계속 자고 있어야 하는 녀석들이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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