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 반항

한 장씩 넘기는 일상

by 김제숙

으~흠, 일기장도 아니고 공개하는 글인데 이런 글을 써도 될까 싶어 잠시 머뭇거렸다.

사람은 참 영악한 동물이다.

마침 언젠가 읽은 글이 생각났다. 세계 유명한 박물관들이 전시하고 있는 상당수의 유물은, 칼을 앞세워 도적질해온 것들이 아니냐는, 그것도 비싼 입장료를 받으면서 말이다.


십여 년 전, 내가 아직 오십 대에 진입하기 전엔 우리나라에서 제일 행복한 그룹이 오십 대의 여성이라는 통계조사에 근거해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남편은 그럴 듯한 직함을 달고 현역에 있고 아이들은 웬만큼 자라 잔손이 갈 나이는 지났을 때이다. 결혼을 시키고 나면 가족이 확장되는 셈이라 그 때는 또다른 문제들이 있을 터이니 말하자면 아들을 군대에 보내고 난 시기의 엄마들이 제일 행복한 부류라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도 옛날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요즘 엄마들은 나라를 지키라고 아들을 군대에 보내놓고 그 아들을 지키기에 노심초사, 안절부절이다.


어쨌든 지금은 오십 대 여성들의 시름이 깊다.

남편은 조기 은퇴하여 집에 들어앉았으니 외출 한 번 자유스럽지 못하다. 아이들을 결혼 시키고 한숨 돌리는가 했더니 맞벌이를 한다고 아예 육아와 살림을 맡아야 한단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 끝이 날지 모르취업준비생의 아이들의 뒷바라지까지 해야 하는 형편이다.


좀 더 겸손하고 좀 더 착하게 살아야 하는 걸까?

요즘 자주 그런 생각을 한다.

지금껏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왔는데 마음은 왜 이렇게 불편하고 힘든지 모르겠다.

다행히 나는 남편이 아직은 현역에 있고 아이들도 취업해 자기 밥벌이를 하고 있다. 그렇더라도 남편이나 아이들을 보면 한 술 밥을 먹기가 얼마나 힘든 사회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식빵 한조각, 얼마 전 유럽여행 중 식당에서 슬쩍 해 온 딸기쨈과 치즈, 차 한 잔이 오늘 내가 혼자 먹는 점심이다.

값으로 따지면 얼마되지도 않는 것을 여행을 가면 작은 쨈을 슬쩍 해 오곤 한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내가 먹는 아침은 고작 커피 한 잔 정도니 두어 개의 쨈을 내 몫으로 쟁여도 괜찮을 것이라고 우긴다.

남편이나 친구들그런 나의 모습에 질색을 한다.


오늘, 쨈을 바른 빵을 먹으며 내 행동에 '왜?' 라는 의문을 품어보았다.

나는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는데 착한 딸로 살았다. 그러다가 한 남자를 만나 또 착한 아내로 살아왔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살다보니 나 스스로 작은 실수나 일탈을 용납하지 못하는 말하자면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지니게 된 듯하다.

어느 때 부턴가 나는 좀 자유롭게 살아야겠다는 자각이 들었다. 물론 남편의 저항이 만만찮았다. 그 자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일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내가 여행지에서 작은 쨈을 슬쩍해 오는 것은 어쩌면 내 삶에 굳어 있는 '착한아이 콤플렉스'를 벗어나고자 하는 작은 일탈이 아닐런지. 소심한 반항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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