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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숙 Jun 03. 2016

소심한 반항

한 장씩 넘기는 일상

으~흠, 일기장도 아니고 공개하는 글인데 이런 글을 써도 될까 싶어 잠시 머뭇거렸다.

사람은 참 영악한 동물이다.

마침 언젠가 읽은 글이 생각났다. 세 유명한 박물관들이 전시하고 있는 상당수의 유물은,  칼을 앞세워 도적질해온 것들이 아니냐는, 그것도 비싼 입장료를 받으면서 말이다.


십여 년 전, 내가 아직 오십 대에 진입하기 전엔 우리나라에서 제일 행복한 그룹이 오십 대의 여성이라는 통계조사에 근거해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남편은 그럴 듯한 직함을 달고 현역에 있고 아이들은 웬만큼 자라 잔손이 갈 나이는 지났을 때이다. 결혼을 시키고 나면 가족이 확장되는 셈이라 그 때는 또다른 문제들이 있을 터이니 말하자면 아들을 군대에 보내고 난 시기의 엄마들이 제일 행복한 부류라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도 옛날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요즘 엄마들은 나라를 지키라고 아들을 군대에 보내놓고 그 아들을 지키기에 노심초사, 안절부절이다.


어쨌든 지금은 오십 대 여성들의 시름이 깊다.

남편은 조기 은퇴하여 집에 들어앉았으니 외출 한 번 자유스럽지 못하다. 아이들을 결혼 시키고 한숨 돌리는가 했더니 맞벌이를 한다고 아예 육아와 살림을 맡아야 한단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 끝이 날지 모르취업준비생의 아이들의 뒷바라지까지 해야 하는 형편이다.


좀 더 겸손하고 좀 더 착하게 살아야 하는 걸까?

요즘 자주 그런 생각을 한다.

지금껏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왔는데 마음은  이렇게 불편하고 힘든지 모르겠다.

다행히 나는 남편이 아직은 현역에 있고 아이들도 취업해 자기 밥벌이를 하고 있다. 그렇더라도 남편이나 아이들을 보면 한 술 밥을 먹기가 얼마나 힘든 사회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식빵 한조각, 얼마 전 유럽여행 중 식당에서 슬쩍 해 온 딸기쨈과 치즈, 차 한 잔이 오늘 내가 혼자 먹는 점심이다.

값으로 따지면 얼마되지도 않는 것을 여행을 가면 작은 쨈을 슬쩍 해 오곤 한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내가 먹는 아침은 고작 커피 한 잔 정도니 두어 개의 쨈을 내 몫으로 쟁여도 괜찮을 것이라고 우긴다.

남편이나 친구들그런 나의  모습에 질색을 한다.


오늘, 쨈을 바른 빵을 먹으며 내 행동에 '왜?' 라는 의문을 품어보았다.

나는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는데 착한 딸로 살았다. 그러다가 한 남자를 만나 또 착한 아내로 살아왔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살다보니 나 스스로 작은 실수나 일탈을 용납하지 못하는 말하자면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지니게 된 듯하다.

어느 때 부턴가 나는 좀 자유롭게 살아야겠다는 자각이 들었다. 물론 남편의 저항이 만만찮았다. 그 자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일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내가 여행지에서 작은 쨈을 슬쩍해 오는 것은 어쩌면 내 삶에 굳어 있는 '착한아이 콤플렉스'를 벗어나고자 하는 작은 일탈이 아닐런지. 소심한 반항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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