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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숙 Jun 12. 2016

베짱이를 꿈꾸며

한 장씩 넘기는 일상

당분간 활자를 좀 멀리하고 만족한 돼지가 되려고 작정했었다. 웬만하면 그냥 '통과'하고 그저 먹고 자고 하고 싶었다. 오래 달리다보면 페이스가 좀 떨어지는 때도 있기 마련이다. 올봄이 특히 그랬다.

이제 여름 한 철,  노래도 부르지 않는 베짱이가 되리라, 결심했다. 무겁지 않은 사진들을 설렁설렁 찍으며...

우스갯 소리로 결심은 깨라고 있는 거라더니 바로 그랬다.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기어이 책 두 권을 주문했더니 총알배송이다.

사실 총알배송도 썩 반갑지는 않다.

대기업의 마케팅전략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드러나지 않게 혹사를 당하고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다.

아무튼 C.S 루이스의 《고통의 문제》와 한강의  《흰》이  내 책상 위에 놓였다.

우선 초면 인사를 나눴으니 쉬엄쉬엄 읽을 참이다. 두 권 모두 속도를 낼 수 있는 책은 아니다.

루이스의 책은 친구의 전언에 따르면 '고통' 완전정복이란다.

오래전 중3때, 완전정복 시리즈가 있었다. 요점 정리가 잘 되어있고 무엇보다 크기가 작아 과목별로 사서 공부했던 기억이 났다.


아무튼 루이스를 통해 고통을 공부해 볼 참이다. 무슨 일이든 이론적인 구조를 먼저 쌓아놓으면 웬만해서는 잘 무너지지 않는다. 실제로 움직이는 것은 감성이다. 가슴이 열려야 무슨 일이건 진도가 나간다. 그러나 그 가슴을 열게 하는 것은 머리다. 세상에서 제일 먼 거리다.


나는 하는 일의 특성상 고통에 직면해 있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좋은 일이면 나한까지 오지도 않지만 그렇잖은 일이면 내가 들여다 봐야 할 경우가 잦다.

그전에는 위로랍시고 내가 공부한 심리학, 상담학의 모든 지식을 동원해 주워섬겼다. 제일 좋지 못한 방법이다.

요즘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찾아가서 가만히 있는다. 상대가 말을 하면 맞장구를 치면서 듣기만 한다.

 '그래, 참 힘들겠구나'하는 몸의 언어를 날린다.

절대 "비 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진다잖아. 좀 더 참고 기다려봐. 좋은 날이 오겠지." 따위의 소리를 하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은 흙이나 자갈 나부랭이가 뒹구는 땅이 아니다.

다르게 다가가는 방법은  맛있는 밥을 사주거나 분위기 좋은 찻집에 가서 커피를 사준다.

아니면 작은 선물을 하곤 한다. 그래도 나를 생각하고 배려하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해 준다.

그리고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답은 고통을 안고 있는 자신이 이미 갖고 있음을 그 자신도 안다. 다만 외로움과 슬픔을 풀 길이 없는 것일 뿐이다.


《흰》은 한 편 한 편이 짧은 소설이다.

대여섯 편을 읽었는데 깊은 슬픔이 느껴졌다. '슬픔'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나오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의 글에서 멈추기 힘든 에너지가 느껴진다.

한 편의 글들이 한 장의 스냅사진 같다.


아, 세상과 좀 단절되어 뜨겁고 긴 여름을 지내고 싶다.
한자락 커튼을 드리우고...
성큼 가을이 왔을 때면 좀 더 그럴듯한 내가 되어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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