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하는 독서
어느 해 봄, 세계 각지에서 온 수많은 여행객 에 섞여서 피렌체 시뇨리아 광장에 있었다. 아무도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이 온전히 혼자인 것이 눈물나게 고마왔다.
지금 생각해보니 살아오면서 끊임없이 어디로 숨고 싶어했던 것 같다. 현실의 나는 늘 사람 가운데 있어야 했고 내 생활은 어항 속 같아서 누구나 훤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이국의 풍경, 코끝을 간질이는 냄새와 피부로 느껴지는 바람에 온전히 나를 내맡기고 한참동안 서 있었다.
광장 가장자리에는 대리석조각이 즐비하게 서 있었다. 그 중에 내 눈길을 끈 것은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다비드상이었다. 골리앗을 겨냥하며 왼쪽으로 얼굴을 약간 돌리고 오른손으로 물맷돌을 쥐고 있다. 소년 다윗이 아니라 근육이 살아있는 청년 다윗이다. 다윗은 영욕의 세월을 산 인물이다. 그의 전성기는 어쩌면, 영토를 넓히고 국권을 공고히 하고 많은 처첩과 자녀를 거느리며 왕으로 살았던 때가 아니라 소년시절 물맷돌로 거대한 골리앗에게 맞섰던 양치기 시절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때 저쪽에서 갑자기 환호성이 터졌다.
피렌체 시청으로 쓰고 있는 베키오궁전에서 한쌍의 신혼부부가 마악 결혼식을 마치고 나오고 하객들은 쌀을 뿌리며 축하하고 있었다.
이 나라 사람들은 우리처럼 사진으로 남겨 기념하지 않나보다. 전문 사진사가 보이지 않았다.
신부의 드레스도 바로 신혼여행을 떠나도 될 듯 간소하였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신부는 내게 슬쩍 윙크를 날렸다. 사진을 찍어도 된다는 신호였다.
기회를 놓칠세라 바쁘게 몇 장을 찍다가 나도 모르게 입에서 탄성이 나왔다. 신부의 팔에 새겨진 나비문신 때문이었다. 결혼이 인생에서 새출발을 의미한다면 나비는 더할나위 없이 좋은 상징이라 생각되었다.
사진을 전해줄 길이 없지만, 내가 여행길에서 만난 유월의 신부가 행복하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