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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숙 Jun 10. 2016

백발의 꿈

몸으로 하는 독서

아직은  내 발로, 내 자동차로 돌아다니지만 더 나이들어 스스로 집 밖 나들이가 힘들어질 때면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까?

요즘 들어 부쩍 그런 생각이 자주 든다.

나는 아직은 그렇지 않는데 주위의 친구들은 눈이 아파 책을 읽기가 힘든다고 하고,  여행을 나서서 일주일을 넘기면 그만 집으로 돌아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단다.


한 달에 한 번, 사진을 찍는 친구들과 모임을 한다. 친구라고 해도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적다.

일을 마치고 조금 늦게 온 한 친구가 밥을 먹고 있는 우리를 보더니 "한 잔 마셔도 될까요?"했다.

일이 많이  힘들었다면서 맥주 한 잔에 소주를 조금 타더니 단숨에 쭈욱 마셨다.

옆에서 보는 내가 다 속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문득 저것 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나처럼 늙어가는 남편이랑  티격태격할 때, 잠시 휴전을 하고 저렇게 한 잔 들이키고 나면 얽혀있던 것들이 다 풀어지고 마음은 광활한 운동장처럼 되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술이라고는 도무지 마셔본 적이 없다.

맥주 반 잔, 소주는 겨우 입술을 적시는 정도. 그나마 좋아하는 와인은 제법 값이 나가는 것이어야 후유증이 없다.

얼마 전, 대형 마트에 갔다가 훈제 닭다리랑 독일산 흑맥주 한 꾸러미를 사왔다.

남편이 외출한 밤, 닭다리를 데우고 맥주 하나를 꺼내 친구가 한 대로 한 컵을 따라 마셔보았다.


사람은 인정하기는 싫지만 몸이 늙으면 마음도 그렇게 된다. 나이가 들면 마음이 더 넓어져서 이해심도 더 생길 것 같지만 내 경우에는 그렇지가 않다.

내가 유난한 건 아닐거라 생각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몸과 마음은 함께 가는 것일 터이다. 노욕이나 노탐 같은 말들이 있는 것을 보더라 노년의 마음 관리가 만만찮다는 뜻이 아닐까?

그게 걱정이 된다. 전혀 내가 원하지도 않는데 내 마음을 내가 제어하지 못하는 때가 오리라는 것을 생각하면 두려움이 인다.

그래서 죽는 날까지 내 힘으로 세상구경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여행은, 하다못해 집 밖 나들이라도 바깥 세상에 서는 것은 몸으로 하는 공부다.


지난 겨울, 동유럽 여행 중 슬로베니아에 갔을 때 호텔 로비에 바가 있었다. 늦은 시간이라 한 잔 하지는 못했지만 사진은 찍었다.

백발의 머리를 이고 더듬더듬 걸어서 길모퉁이 어느 바에서 맥주 한잔을 앞에 두고 앉아있는 내 모습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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