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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숙 Jul 02. 2020

읽는 인간 1

2020.7.2.목

카페에서 독서 수업을 하고 있는데 알람이 울었다. 예의 그 친절한 남자가 3시라고 알려주며 즐거운 하루가 되라고 한다. 수업이라고 하기에는 거의 수다에 가깝지만 한 달에 두 번, 삼 년여의 시간을 정기적으로 함께 보냈고 리더인 나에게 적잖은 수업료를 지불하고 있다. 명목은 수업료라지만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사서 읽으라는 배려일 듯.


수업을 시작하면서 3시의 ‘무모한 도전’에 대한 이야기를 해둔 터라 말을 잠깐 끊고 카메라를 들이대자 생뚱맞은 나의 행동에 기꺼이 호응을 해주었다.     

멤버는 나까지 세 명이다. 읽고 쓰는 일에 별 상관이 없을 듯한 무용학원 원장선생님, 다른 한 명은 사진하는 떡집 사장님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먹는 것만큼이나 읽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나보다도 더 체득한 분들이다.     


오에 겐자부로는 『읽는 인간』에서 일생동안 만난 책 이야기를 썼다. 유년 시절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만난 것은 운명이었다고 말했다. 엘리엇과 포의 시집을 읽으며 언어에 대한 감각을 익혔고 『신곡』과 『오딧세이아』 등을 읽으며 생을 통과한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놓았다.     


유년 시절, 대가족이었던 우리 집에도 당시로서는 드물게 책이 많이 있었다.  <소년중앙>이나 <어깨동무>, <새소년> 같은 잡지도 매달 볼 수 있었다. 게다가 시골에서 서당 훈장을 하시다가 맏아들인 우리 아버지가 사는 도회지로 이사를 오신 할아버지 완전 이야기꾼이셨다. <장화홍련전>, <유충렬전>, <박씨전> 등 고전을 듣느라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몰랐다. 아마 오빠나 내가 문학 가까이에서 살아온 것은 모두 할아버지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근처에 사는 친구 집에는 다락에 책을 쌓아두었던 우리 집과는 달리 온통 책이 있는 방이 있었다. 넓은 마당과 신식 주방, 세탁실까지 있고 집안일 하는 사람도 따로 있었다. 잘 꾸며진 정원을 지나 책방으로 가서 계몽사 <세계위인전집>이나 <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을 빌려다 읽은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니 친구의 부모님은 뵌 기억이 나지 않고 일하는 아줌마가 또 책 보러 왔니?, 하면서 반갑지도, 그렇다고 귀찮아하지도 않은 얼굴로 묻곤 하던 기억이 난다. 그 시절을 거쳐서 아마 책 읽기를 좋아하는 오늘의 내가 된 것 같다.  

베르토 에코는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은 단지 자신의 삶만을 살아가고 책을 읽는 사람은 아주 많은 삶을 살 수 있다고 했단다.

  

일 년 전 이사를 하면서 서재의 책을 구십 프로는 처분을 했다. 이제는 좀 단출하게 살고 싶고 그럴 나이도 되었다. 남편에게는 책을 그만 사라고 엄포를 놓으면서 정작 나는 끊임없이 책을 사들이고 있다.     


중고로 주문했던  『3시의 나』가 오늘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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