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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숙 Jul 19. 2020

3시에 잠시 멈추기

2020.7.19.일

3시에 잠시 멈춰서 사진을 찍고 글을 써보겠다고 결심한지 삼 주가 다 되어간다. 무슨 일이든 이십 일 쯤이면 습관이 되어 탄력이 붙는다고 했다. 나도 지금까지 별 무리없이 3시에 잠시 멈추고 사진을 찍었다. 글은 생각을 좀 더 다듬고 다른 사진을 곁들이느라 제 시간에 올리기는 무리였다.


찬찬히 생각해 보니 그전에 사진을 찍으러 다닐 때, 그 무렵에도 3시에 대한 다른 생각이 있었는지 3시에 맞춰 찍은 사진이 몇 장 있었다.

내가 수필가로 등단을 한 것은 <신라문학대상>을 받고서였다. 등단작은 <인생시계>였다. 우리 인생이 팔십 년이라 가정하고 그것을 하루로 환산했을 때 오후 3시는 쉰에 해당된다. 나는 그 언저리에서 수필가가 되었고 사진가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오후 3시는 오후의 정점, 빛나는 시기인 것 같다. 여전히 글을 쓰고 있고, 독서모임을 하고, 사진도 찍고, 시조시인이 되었지만 3시에 대한 향수는 여전히 아련하다.  


오늘 오후 3시, 예배를 드리고 와서 차려입은 옷 그대로 다음 달에 있을 독서모임 교재를 읽고 있다. 가끔 꼭 써야 할 글이 잘 되지 않을 때 나는 한밤중이라도 세수를 하고 화장을 하고 정장을 입고 구두를 신고 책상 앞에 앉아서 글을 쓰는 버릇이 있다.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아서 좀 더 집중을 할 수있다. 내 경우엔.


그날이 그날 같아서 조금 우울하곤 했었는데 3시에 하던 일을 멈추고 잠시 내가 무얼하고 있는지 글을 남겨보니 하루도 같은 날이 없었다. 책을 읽더라도 같은 책이 아니고 마당에 있더라도 같은 마당이 아니었다. 가지는 좀 더 짙은 보랏빛으로 자랐고, 고추도 더 여물어졌고, 접시꽃은 폈다가 지고 다시 봉오리를 터트리고, 나리도 속눈썹을 좀 더 짙게 드리우고, 백일홍도 가족을 늘리고, 봉숭아는 더 맹렬한 기세로 영역을 확장하고...


오늘은 3시에 멈춰서 3시에 관한 명상중이다.

앞으로의 3시가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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