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어 해 전, 늦은 밤 혼자서 잉그리드 버그만 전기영화를 보았다. 영화를 다 보고 인터넷 검색으로 그녀의 사진들을 살피다가 가슴을 확 치는 사진을 보게 되었다.
날이 밝기가 무섭게 '자전거 있는 사람 손을 드시오' 라는 단체톡을 날려 자전거 수배에 나섰다. 마침 집에 초보자용 자전거가 두 대 있다는 답이 왔다. 일단 처음 자전거 타기 동영상을 보고 예습을 했다.
자전거가 있다는 집은 자동차로 5분여 거리에 방파제 안쪽으로 운동장만한 공터가 있다. 바다를 끼고 연습할 수 있는 곳이라니.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주위에다 알렸다. 동네방네 소문을 내는 것은 중요하다. 도중에 그만 두고 싶어서 발을 빼지 못하게 하는 한 방법이다. 난관은 엉뚱한데 있었다. 반대가 극심했다. 우리 나이에 여차하면 '깁스 6개월'이라는 거였다. 게다가 남편한테는 입도 뻥긋 안했다.
아무리 그래도 잉그릿드 버그만이 우아하게, 유유자적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캡쳐해두고 그녀로 빙의하기를 오매불망 희망하는 내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2018년 10월 17일.
자전거 독학의 길에 나섰다.
동영상에는 아주 완만한 내리막길에서 자전거에 올라앉아 페달을 밟지 말고 두 다리를 쭉 펴서 내려가며 중심잡기부터 시작하라고 했다.
그렇게 몇 차례 연습을 했지만 첫날은 페달에 발을 얹고 두어 바퀴도 굴리지 못했다.
셋째날부터 직진은 되었다. 처음 연습할 때는 아무리 더 타고 싶어도 20분을 넘기지 않았다. 욕심 부리지 않고 천천히 갈 작정이었다. 빨리 배울 이유도 없었다. 의욕이 넘쳐서 한순간에 '깁스 6개월'의 불상사를 만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게 20분에서 30분, 1시간을 거뜬히 타게 되었다.
1주년엔 경주 보문단지 한바퀴, 3주년엔 제주도 일주 계획을 세우고 꿈에 부풀었다. 날마다 자전거 타는 시간을 기다릴 정도로 자전거에 푹 빠져지냈다. 작년엔 보문호수를 한 바퀴 돌았다. 내년에는 여행이 좀 자유로워져서 제주도 일주를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웬만한 거리는 갈 수 있을 즈음 남편에게 들통이 났다. 자전거 주인집 아저씨가 남편을 길에서 만나 내가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자전거를 아주 잘 탄다고 했다는 것이다.
미리 말했더라면 결사반대 했을텐데 어쩔수 없이 조심해, 한 마디 하고 넘어갔다.
자전거에 마음이 가 있을 때에도 내 마음 저 깊숙이에는 사진이 들어있다. 자전거를 타가다 풍경에 곧잘 마음을 빼앗긴다
지금은 내 자전거도 있지만 잘 타지 않는다. 우선 날씨도 너무 덥고 책 읽을 것이 밀린 탓이다.
옆에서 내가 자전거 타는 것을 보다가 남편도 시작했다. 남편은 나와 달리 요즘도 하루에 두세 시간은 탄다.
어제는 점심을 먹으면서 요즘 왜 자전거 안타냐며 같이 라이딩을 하자고 한다.
남편은 취미를 일로 만드는 비상한 재주를 갖고 있다.
나의 자전거타기는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다. 적당한 속도로, 적당히 쉬면서 즐기기 위한 것이다. 내 외로움이나 슬픔을 희석시켜 조금은 가벼워지고 싶을 때 나는 그저 두 다리로 밀어서 앞으로 나가고 싶다. 이런 내 마음을 알리 없는 남편은 무엇이든지 시작을 했으면 왜 규칙적으로 하지 않는지 의아해 한다.
얼마 전에도 꼬드낌에 넘어가서 나섰다가 죽는 줄 알았다. 어디까지 가서 점심 사먹고 오자는 것이었다. 얼마나 걸리겠냐니까 두 시간 반에서 세 시간 쯤 될거라 했다. 겨우 한 시간 남짓 타곤 했지만 그 정도는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웬걸, 왕복 다섯 시간이 걸리는 코스였다.
집에 와서 소릴 질렀다.
"내가 빙의하고 싶은 사람은 잉그리드 버그만이지 김복동이 아니라고!"
날마다 움직이는 남편의 자전거에 비해 마당 한켠에 세워져 쉬고 있는 내 자전거. 저도 달리고 싶어할까?
오늘은 한 번 물어봐야겠다. 그러나... 어쩐지 내 자전거는 내 마음을 알고 있을 것 같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자전거타기를 배운 건 잘한 일이다. 언제이건 내가 타고 싶을 때 탈 수 있다는건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