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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숙 Aug 02. 2020

며느리네로 휴가 가는 시부모

2020.8.2.일

내일부터 일주일간 휴가다.

작년부터 휴가는 아들 며느리네로 간다.

아들 내외, 손주, 남편은 좋겠지만 나는 별로다.

아니 또, 주중 사흘 외손주 보시는 사돈네도 좋으시겠네. 두루두루 좋은 일이어서 이 한몸 불사르기로 했다.


이틀 걸려 장을 보았다. 일주일동안 먹을 식재료들을 샀다. 바로 집 근처에 큰 마트가 있는데 거기서 사면 아이들이 돈을 써야해서 그냥 내가 편한대로 했다. 반찬도 아예 만들어가기로 했다.

아이들은 여기가 북한이야?왜 먹을걸 들고 다니냐고 난리다. 예전엔 학교에서 그렇게 배웠다. 북한에선 식량이 부족해서 친척들 집에 가도 자기 양식을 갖고 간다고. 내가 꼭 그 모양새다. 며느리 주방에서 무얼 한다고 덜그덕거리면 며느리가 불편해 할거고 나도 그건 싫다. 거기선 최소한만 움직여야지.

며느리는 사흘을 친정에서 자고 출퇴근을 하니 아들과 손주와 함께 지내야한다.


고등학교 기숙사 생활을 시작으로 집밥을 먹지 못한 아들에 대한 연민이 있다. 내가 굳이 밥을 해먹이러 가는 이유이다. 며느리도  부모님이 바쁘셔서 제대로 집밥을 먹지 못하고 자란듯 했다. 내가 저희들 집에 가도 시어머니인 내게  "어머님, 오늘 저녁 메뉴는 뭔가요?" 묻곤한다.

나는 그런 솔직한 며느리가 좋다. 서로 잘 하는 걸 하면서 살자고 했다.


지금부터 폭풍 반찬 만들기를 해야한다. 가서 해먹을 건 재료를 다듬어야 한다.

텃밭을 훑었다. 고추, 토마토를 따고 부추를 베어야한다. 불고기 양념장, 간장소스는 아침에 만들어두었다. 초계탕도 넷이서 한 번 먹을 분량을 만들어 냉동실에 얼려두었다. 전복갈비탕도 두 번 먹을 분량을 해두었고, 소고기버섯탕, 돼지고기 장조림은 가서 해먹을 메뉴다. 고기는 진공포장해서 급속 냉동을 해두었다.

남편이 좋아하는 감자조림, 내가 좋아하는 꽈리고추찜, 아들이 좋아하는 미역줄기 볶음, 며느리가 좋아하는 낚지볶음은 저녁에 만들 참이다.

우리 가족 모두 좋아하는 부추

이 모든 일을 해내고 휴가를 잘 마치고 오면 나 혼자 이박삼일 정도 여행을 갈 생각이다. 나만의 온전한 휴가이다. 최소한으로 먹고 많이 자고 빈둥거릴 참이다.

부모라고 해서, 여자라고 해서 어느 한쪽만 인내나 희생을 강요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나는 친정엄마가 그렇게 사시는 걸 보고 자랐다. 그래서 여자들은 '엄마처럼 살지 말아야지.' 생각은 하지만 어느 순간 엄마로 빙의해 살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나도 주위의 친구들에 비해 자식들에게 조금맹목적이다. 아이들을 일찍 집에서 떠나보낸 것이 늘 마음에 걸렸다. 부대끼며 살아보지 못했다. 아이들도 부모에게 응석 한 번 부리지 못했다. 그 시기를 건너뛴 것이 못내 서운했다. 내가 바리바리 사들고 가서 먹이고 싶어하는 게 그래서이다.

그럼에도 나의 수고는 만만치가 않다. 여행은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이 복잡한 과정들을 즐겁게 감내할 수 있게 하는 묘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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