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심이라는 이름의 가면을 벗기로 했다

에스겔15-17장

by 연휘

오늘은 하나의 이야기로 시작하려 한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길가의 핏덩이. 그 비참한 존재를 발견한 왕자는 자신의 옷을 벗어 아이를 덮어준다. 죽음의 문턱에서 건져 올려진 아이는 왕자의 신부가 되어 세상에서 가장 눈부신 영광의 드레스를 입는다. 하지만 비극은 여인의 '시선'에서 시작되었다. 왕자는 그녀의 과거까지 품어 안으며 은혜의 옷을 입혀주었지만, 그 비단 자락은 여인의 몸에 깊게 패인 수치심의 흉터까지 지워주지는 못했다.


여인은 거울 속 제 등 뒤에 남은 그 비릿한 흔적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결국 그녀는 왕자가 선물한 드레스를 벗어던지고, 스스로 '수치심'이라는 이름의 가면을 겹겹이 지어 입었다. 자신의 과거를 모르는 이들에게 오직 지금의 화려함만을 보여주며, 가면 아래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 관심 없는 세상의 가치를 찾아 담장 너머를 기웃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에스겔 16장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한 여인의 화려한 몰락을 서늘한 잔혹 동화처럼 그려낸다.


이것은 사실, 우리 존재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정직한 거울이다.


우리는 흔히 흉터를 부끄러워한다. 그래서 수치심이라는 이름의 페르소나를 입고 하나님을 피한다. 아담과 하와가 무화과나무 잎으로 자신을 가렸던 것처럼, 우리도 종교적인 열심이나 도덕적인 완벽주의라는 옷감을 짜서 내 안의 비릿한 냄새를 가리려 애쓴다.


문제는 우리가 행하는 '가벼운 회개'다. 우리는 드레스에 묻은 작은 얼룩 하나를 지우는 일에는 몰두하면서도, 그 옷 아래 감춰진 썩어가는 흉터를 직면하는 일은 죽기보다 싫어한다. 흉터가 없어야 사랑받을 수 있다고 믿는 지독한 교만 때문이다. 내 힘으로 흉터 없는 완벽한 존재가 되고 싶은 그 마음이, 역설적으로 우리를 가장 위선적인 포로로 만든다.


수치심의 가면은 사실 우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가면이 우리를 진짜 사랑으로부터 고립시킨다.


나 역시 오랫동안 수많은 '척'으로 나를 가장해왔다. 교양 있는 부모인 척, 거룩한 신앙인인 척하며 살았지만, 사실 나는 내 흉터를 들킬까 봐 하나님조차 내 삶의 경계선 밖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내가 나를 용서할 수 없어서, 하나님의 전적인 용서조차 거부하는 지독한 교만 속에 살았던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입은 가짜 드레스에는 관심이 없으시다. 그분은 우리가 스스로 지어 입은 수치심의 가면을 벗고, 그 비릿한 흉터를 그대로 가지고 당신 앞에 서기를 기다리신다.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고 말씀하셨던 그분은, 우리의 흉터가 곧 그분의 은혜가 머무는 자리임을 이미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수치심의 드레스를 벗어 던지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자유해진다. 내 흉터가 부끄러움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살려내신 증거임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타인의 시선이라는 감옥에서 걸어 나와 하나님이 주시는 진짜 평안을 누리게 된다.




"사랑하는 딸아, 수치심이라는 무거운 옷을 겹겹이 껴입고 나를 피하며 사느라 참 많이 지쳤지? 이제 그만 내게로 오렴. 더는 네 스스로를 증명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단다. 네 등 뒤에 남은 그 흉터는 부끄러운 낙인이 아니라, 아무도 돌아보지 않던 너를 내가 처음 안아 올렸던 그날의 '훈장'이란다. 그러니 내 앞에서만큼은 그 흉터를 당당히 내보여도 괜찮아. 나는 이미 네 모든 아픔과 비참함을 다 알고 있단다. 그러니 더는 가리지 말고 내 품에 안겨 쉬렴. 내가 너를 새롭게 옷 입혀 줄게. 너를 가두는 수치심의 가면 대신, 너를 가장 자유롭게 할 하늘의 옷으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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