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를 낀 채 불륜을 저지르는 당신에게

에스겔 19-21장

by 연휘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손가락엔 반지가 끼워져 있는가? 요즘은 웨딩 밴드로 까르띠에 같은 명품 반지를 맞추는 것이 자연스러운 풍경이 되었다.


스물넷에 결혼한 나는 명품에 무지했고, 그저 관례를 따라 다이아 반지를 나눠 끼고 식장에 들어섰다. 하지만 그 소중하다는 반지는 지금 내 손에 없다. 일과 육아에 거추장스럽다는 이유로, 혹은 남편의 손에 맞지 않는다는 핑계로 서랍 속에만 두던 것을 결국 팔아버렸기 때문이다.


당시의 나는 그 보석을 팔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고 가치 있는 선택이라 믿었다. 보석의 화려함만 보았을 뿐, 그 원 안에 담긴 지독하고도 무거운 약속의 의미를 미처 몰랐던 것이다.


에스겔 20장을 읽을 때마다, 하나님은 12절의 ‘안식일’이라는 단어 앞에 나를 멈춰 세우신다. 이 안식일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표징이 되어, 그분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주인인 줄 알게 하려는 것이라 하셨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안식일은 마치 부부 사이에 나눠 끼는 결혼반지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가 누구의 것인지, 우리가 맺었던 그 결혼 서약을 기억하게 하는 반지 말이다.


반지는 그저 화려한 보석이 아니다. 그 안에는 서로가 누구의 소유인지를 매 순간 깨닫게 하는 '언약'이 담겨 있다. 손가락을 감싸는 반지의 둥근 원처럼, 일주일마다 돌아오는 안식일은 우리 삶을 촘촘히 에워싸는 하나님의 변치 않는 약속의 테두리다.


6일 동안 수고한 자들에게 쉬라고 하신 것 역시, 신부 된 우리를 향한 신랑 하나님의 절절한 고백이다.


"네가 애쓰고 노력해서 먹고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를 먹이고 입히고 살리는 진짜 주인이다"


안식은 신부가 자신의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는 것을 멈추고, 신랑의 완벽한 돌봄 안에서 오직 그분만을 신뢰하며 평안을 누리는 가장 고귀한 의식인 셈이다.


하지만 인간의 뿌리 깊은 불안은 이 완벽한 평온을 견디지 못한다. 내 손으로 무언가를 쥐고 있어야만 살 수 있을 것 같은 조급함은, 신랑의 돌봄을 '무능'으로 오해하게 만들고 끝내 담장 너머를 기웃거리게 한다.


이스라엘이 안식일을 더럽혔다는 말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이것은 단순히 종교적인 날짜를 어긴 죄가 아니다. 남편이 끼워준 결혼반지를 손가락에 낀 채로 불륜을 저지른 것과 같다. 하나님이 주신 풍요를 가지고 담장 너머의 독수리에게 구애하며, 반지를 끼워준 분의 명예를 처참히 짓밟았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실용적인 가치를 만들어내거나 대단한 선행을 베풀기보다, 그저 그분이 주신 이 언약의 징표를 소중히 여기며 그분 곁에 머물기를 바라셨다.


이 지독한 기만을 향해 하나님은 결국 움직이신다. 우리가 배신을 감추기 위해 심어놓은 울창한 ‘네게브의 숲’에 불을 지르신다. 6화에서 우리가 스스로 멈추기로 했던 그 수많은 핑계의 나무들이 여전히 울창하게 우거져 하나님을 피하는 은신처가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바벨론이라는 칼을 들어 우리를 에워싸신다. 이것은 파괴를 위한 분노가 아니다. 남편의 이름을 더럽히고도 감각이 없어진 아내를 향해, 그 비릿한 가식(5화)을 다 태워버려서라도 다시 '거룩'을 회복시키려는 처절한 사랑의 집행이다.


여기서 우리는 에스겔의 대주제인 ‘사명’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 흔히 사명을 나의 열심이나 거창한 업적이라 오해하곤 한다. 그러나 진짜 사명은 나를 살린 주인의 주권을 인정하는 ‘안식’에서 시작된다.


주인의 손을 놓친 열심은 사명이 아니라, 반지를 낀 채 저지르는 또 다른 기만일 뿐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사명의 본질은 거룩이다.


우리는 결코 스스로의 힘으로 거룩하여질 수 없다. 오직 거룩하신 하나님만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실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대단한 일을 해내길 바라신 것이 아니라, 그저 그분이 주신 이 약속과 징표를 소중히 여겨달라고 말씀하신다.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내 존재의 주권이 나에게 없음을 인정하고, 사명의 에너지를 내 노력이 아닌 주인에게서 공급받겠다는 겸손한 항복이다. 분주한 일상의 걸음을 멈추고 내 손가락에 끼워진 '언약의 반지'를 내려다보는 시간이다.


혹시 우리는 지금 사명이라는 이름의 다른 독수리를 쫓으며, 약속의 반지를 낀 손으로 세상을 유혹하고 있지는 않은가. 모든 핑계의 숲이 타버리기 전에, 나를 핏덩이(5화)에서 살려내어 신부 삼아주신 그분의 이름을 다시 불러본다.


그분께 온전히 붙어있는 것, 그것이 사명자가 누릴 수 있는 유일하고도 완전한 안식이다.




"사랑하는 딸아, 네 손가락의 반지를 보듯 내가 네게 준 안식일을 보아라. 그것은 네가 누구의 소유인지, 네 주인이 누구인지를 기억하게 하려 내가 친히 끼워준 약속이란다.네가 스스로를 입히고 먹이기 위해 발버둥 치는 그 수고를 잠시 멈추어도 좋다. 안식은 네 무능을 증명하는 시간이 아니라, 신랑 된 하나님의 완벽한 돌봄을 신뢰하는 가장 거룩한 의식이기 때문이란다. 내가 네게 바라는 사명은 세상이 말하는 거창한 업적이나 화려한 보석이 아니란다. 그저 세상에게 눈길을 주지 않고, 내 곁에 오롯이 머물며 나와 맺은 언약을 소중히 여기는 그 '거룩' 하나면 나는 충분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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