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어느 멋진 날에

by 지구 사는 까만별




미련 많은 가을이 쉬이 떠나지 못하는 11월 어느 정오. 이곳에는 마음만큼 부드러운 옷들이 걸어 다닌다. 옷장에서 가장 아끼는 옷을 깨워서, 새 옷을 입은 사람들을 축하해주는 길. 나무는 노란 옷을 갈아입고, 꽃병은 새 꽃을 갈아입고서 멀리서 온 미소들을 맞이한다.

하얀 샹들리에는 하얀 것들을 빛낸다. 탁자 위에는 하얀 식탁보가, 맞잡은 손에는 하얀 장갑이, 신부의 얼굴 위에는 하얀 면사포가 샹들리에 아래에서 빛난다. 하객들의 빛나는 눈도 샹들리에를 맞아 함께 반짝인다. 순간이 빛을 만나 영원이 된다는 것이 참 사진을 닮았다. 사진보다 더 진실한 순간이기에 검은 암실은 열심히 오늘을 담았다.


보트 파티에서의 오찬,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사진에는 이런 순간들이 담겨 있었다. 그림처럼 신부는 하얀색, 신랑은 검은색 옷을 입었다. 그림처럼 하객들의 시선은 다양한 곳으로 닿아 밝게 술렁였고, 하얀 식탁보 위에는 신선한 꽃들이 빛 아래서 빛났다. 그리고 사람들을 식물과 빛이 내려다보는 그림 같은 정오였다.


긴 만남 끝에 오늘을 맞이한 주인공들이 긴 만남의 작은 증거처럼 서로를 아끼고 존중한다. 평소와 달리 얼굴에 얇은 면사포를 한 신부에게, 신랑이 편지를 낭독한다. 얇은 베일에 쌓인 신부와 달리, 신랑의 편지는 한 겹의 숨김도 없어, 그대로 군중에게까지 가 앉는다.

하객처럼 수북한 꽃잎들 사이로 새로운 출발을 향해 길을 걷는 둘. 꽃잎이 내려와 새 옷감에 닿으며, 같은 향을 묻힌다. 앞으로 둘은 같은 향을 겪으며 과거에 그러하듯 세상을 살아갈 것이다.


적당히 흥성거리는 식사 자리에는, 다양한 옷감의 사람들이 다양한 음식을 골라 다양한 목소리를 내며 밥을 먹는다. 다양한 옷의 사람들이 옷만큼 다양한 근황을 내어놓고, 마침내 비슷하게 풍성한 냄새를 옷에 저장하고 나온다.

식사자리에서 만난 신부는 신랑과 아까의 꽃잎 향을 가득 품은 채 우리에게 인사를 한다. 깔끔한 의상 안에 그들이 겪었을 너덜한 성장통이 보인다. 긴 만남 끝에 오늘을 맞이한 작은 증거다. 반창고를 붙여보았기에 순백의 면사포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옷을 갈아입고서도, 같은 마음 같은 향을 내기 위해 둘은 함께 걸을 것이다. 그걸 알기에 나는 활짝 웃었다. 반창고 자국과 면사포 모두를 향하여.


흥성거리는 시간 아래, 가장 귀한 옷감을 꺼내 찾아왔던 사람들이 다시 일상으로 흩어진다. 흩어진 사람들도 반짝이고 풍성한 감각들을 가지고, 다시 함께할 사람 곁으로 하나 둘 돌아간다. 면사포와 턱시도를 벗은 두 명이 꽃잎의 향기를 지키고자 하는 것처럼...










P.S

하객들이 웃고 있는 모습과 그날의 결혼식이 르누아르의 작품을 닮아 얹습니다. 하객들의 환한 웃음이, 조카와 조카사위 덕임을 그들은 알까요.

흰 옷과 검은 옷의 두 명이 함께 미소 지음이 그림속 그들을 닮았습니다.

강아지를 보고 있는 저 여인이 르누아르의 아내입니다. 저 여인처럼, 제 조카도 이모인 제게 여태 사랑스럽기만 하네요. 앞으로도 저 파티만큼 예쁜 미소 지으며 평생 잘 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