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불러도 지치지 않을 그 이름 ‘엄마’.
내게는 떠올리는 순간 세상 따뜻해지는 엄마가 계신다. 그 시대 대부분의 어머니가 그랬듯, 우리 엄마 또한 억척스럽고도 고단한 시절을 건너오셨다.
가세가 기울어 본 적도 없을 만큼 가난한 시골 총각에게 시집와서, 별스러운 시부모에다 출가하지 않은 시누이들까지 같이 살았다. 그 와중에 밭에 나가 일을 하고, 하루 세끼 밥을 짓고, 우리 5남매까지 키우며 살아오셨다. 아니 살아 내셨을 것이다.
어린 시절에 막내인 내가 바라본 엄마는 한없이 깊고 고요한 강물 같은 모습이셨다. 밖에 나가서도 그 흔한 자식 자랑 한 번 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 대한 욕이나 험담조차 하지 않으셨다. 지금의 내가 봐도 평범하지만 비범하고도 고운 품성을 가진 분이시다.
요란한 시어머니와 수틀리면 때론 밥상도 엎어버리던 남편과 한 지붕 아래 같이 살아간 엄마. 그러나 이따금 밭에서 집으로 돌아오신 엄마의 손에는, 점점 거칠어가는 당신의 손과는 다른 질감의 여린 들꽃이 들려 있었다.
이뻐서 꺾어왔다며 그 흔한 꽃병 대신 사이다 병에 소담스럽게 꽂아 놓고 병을 바라보실 때는 참으로 소녀 같았던 우리 엄마, 나의 엄마...
그때의 막내가 지금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엄마의 인생을 한 명의 여인의 삶으로써 바라보니 너무 애달파서 가슴이 아려 온다.
시집가던 스물 한살 엄마의 가슴에도 꿈이라는 아름다운 소망이 피어 있었을 것이다. 그 꿈이 무딘 굳은살로 바뀌어 가던 그 긴 세월 속에서 많이 고단하고도 서러웠을 우리 엄마. 그 삶의 무게가 내 가슴을 짓누른다.
세상에서 가장 뜨겁고 따뜻한 단어는 ‘엄마’라는 당연한 진리를 가장 진실되게 녹여서 전해준 우리 엄마. 저녁나절 선선한 바람이 피부에 닿았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난다. 당신께서는 눈 감으면 간절하게 느낄 수 있는 바람처럼 마음 가장 가까이에서 살고 계신다. 그렇기에 무심하게, 하지만 본능적으로 나는 엄마를 느끼고 그리워하며 살고 있다.
팔순을 넘기신 연세에도 엄마는 작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수발을 드셨다. 그렇게 평생을 고단하게 살아오신 우리 엄마…
그 묵직하고도 숭고한 삶 앞에서 절로 고개가 떨구어진다.
하지만 마음으로나마 늘 함께하는 오 남매가 있고, 가까이에는 살갑게 잘 챙기는 딸들이 있으니, 엄마의 남은 삶은 무거움 훌훌 털어 가뿐하고도 평화로우면 좋겠다.
그래서 몇 송이 못 꽂던 사이다 병이 아니라 화단에 양껏 흐드러지게 핀 꽃들을 구경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더 좋겠다.
꽃은 말이 없기에 하루가 길게만 느껴질 엄마의 집이 자식들의 발걸음으로 자주 북적북적거리면 더욱 좋겠다.
그 북적임을 흐뭇하게 바라보실 온화한 엄마의 모습을 오래오래 바라보고 싶다. 불꽃같이 한없는 엄마의 온기가 그득 지펴져, 나른한 풍경으로 전락해버린 나의 고향까지도 훈훈해졌으면 한다. 한참을 놀다가 우리 집 굴뚝에서 연기가 올라오는 걸 보고서야 집으로 돌아가던 유년의 온기처럼...
내 유년은 그리도 따스했건만, 정작 내 유년을 데워준 엄마는 연기에 매운 날이 많았으리라. 연기처럼 피어오르고 허무하게 날아오르던 긴 한숨과 땀이 배인 지친 당신의 인생을 한없이 보듬어 주고 싶은 저녁나절이다. 마지막 까치발을 든 늦여름과 초가을 사이의 오묘한 공기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