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my father

by 지구 사는 까만별




젊은 시절, 아버지께선 우리 남매들에게 우주같이 드넓은 존재였어서, 아버지의 한마디가 우리에겐 법이자 순종해야 할 명령이었다. 기세도 대단하셔서 따뜻한 방안을 냉기류로 바로 얼려 버리는 날도 있었다. 솔직히 나는 당신의 그런 모습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가 싫어했던 아버지의 강한 모습은 사실 우리 남매들을 먹여 살리기 위한 것이었으리라. 평생 고단하게 가족을 위해 희생하시고, 오일장에 나가서 평생 몇 번 외식하실 때도 고작 냉면 한 그릇 사드신 게 다인 아버지...


그랬기에 아버지는 세월이 흐를수록 어질고 환하게, 내가 좋아하는 모습으로 우리 곁에서 늙어가셨다. 젊었을 때도 늘 엄한 분은 아니셨다. 쌀쌀하던 초겨울날 마당의 군불에 생기는 난기류 위로 농담들을 던져 따뜻하게 흘려보내시는 날도 많았다. 강한 모습도 부드러운 모습도 섞여 계셨는데 기운이 빠지고 지켜야 할 가족의 수가 줄어들면서 당신의 노년에는 오롯이 웃는 얼굴만 남으셨다.

뜬금없이 남매들이 카메라를 들이대도, 마다하지 않고 오히려 더 활짝 웃으며 함께 사진 찍어주시던 내 아버지. 훗날 우리가 사진을 들여다보며 그리워하실걸 미리 아셨나 보다.


식성 좋으셨던 분이 돌아가시기 얼마 전부터는 물 한 모금도 겨우 넘기기 버거워하셨다. 돌아가시기 전에는 급하게 앙상해져 가는 모습을 바라보느라 힘들었는데 이젠 그 모습마저 볼 수 없어 또 다르게 힘이 든다.


먼저 떠나신 아버지는 혼자 남을 엄마가 돈 걱정하지 않게 해 주려고, 밭을 일구며 번 돈과 장성한 자식들에게 받은 용돈들을 몇 푼 쓰지도 않고 모으셨다. 악착같이 벌고서는 빈손으로 훨훨 떠나신 아버지. 고단한 그 인생의 끝자락이 잡힐 듯해서 가슴이 미어진다.


지금도 시골에 달려가면 환하게 손 흔들며 맞아주시고 배웅해 주실 것만 같은데...

눈 뜨고도 더 이상 아버지가 안 보이는 상실의 눈이라 오늘도 나는 그리움에 막막하다.


길지만 쉽사리 끊어져버리기에, 선조들은 사람 사이의 만남을 실날에 비유하고는 했다.

하지만 만남이 끝나고도 그 그리움은 긴 걸 보니, 사람의 인연은 실날보다 무겁고 질긴 성질을 가졌나 보다.


시간과 시간 사이에, 마음과 마음 사이에, 삶과 죽음 사이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여진 부재라는 연결의 끈을 속절없이 잡아당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