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선한 가을 내음을 차에 싣고, 엄마 홀로 계신 시골에 다녀왔다.
함께 읍내 나가서 코로나 2차 접종도 해드리고, 정미소와 같이하는 미용실에 들러 쌀알같이 하얗게 물든 엄마의 머리카락을 단정히 자르기도 하고, 엄마랑 같이 슈퍼에서 장도 봤다. 집에 돌아와서는 함께 늦은 점심을 배불리 먹었다. 후식은 찹쌀도넛였는데, 엄마는 그 흔한 것을 꼭 곶감 같다며 맛나게 드셨다. (전에 드셔 봤던 적 있다고 했지만 첨 드시는 눈치였다.)
배부른 오후에 평일이라 더 한적한 시골길을 호젓이 산책했다. 평화롭다 못해 시간이 멈춘 느낌이다.
내 유년시절의 정겨운 풍경을 고스란히 품은 채, 이상할 만큼 고요히 시간이 흐르는 그곳을 가르며 추억 속으로 들어가 본다.
작년 여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편히 잠들어 계신 산소를 멀찍이서 바라보다가, 살아생전 당신이 가장 많이 일하시어 익숙하실 집 앞의 논밭으로 가봤다. 주인을 잃어버린 논밭이라 풀이 무성하거나 휑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히 논을 빌린 이웃집이 땅을 잘 일구어놨다. 벼가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는 풍요를 배부르게 바라다봤다.
식물들을 보니 기억들이 다시금 살아난다. 새벽을 가르며 식솔들 챙기느라 버거웠을 텐데도 마른기침으로 일어나 바로 밭으로 나가시던 우리 아버지. 땅에서 뽀록 뽀록 기어올라와 파릇파릇 커가는 곡식들이 자식들 커가는 것처럼 신기하셨는지, 한참을 말없이 흐뭇하게 바라보시던 아버지 살아생전의 모습. 기억들은 식물들처럼 여전히 싱싱하고도 선명하다.
먹을 것 하나부터 부족해서 귀하던 유년시절의 나는 과연 행복했던가. 힘든 상황에서도 늘 유머로 가족과 이웃을 대하던 아버지 모습을 떠올려본다. 그게 우리 남매들에게 유전된 덕에 지금까지도 큰 갈등 없이 만나면 그저 한바탕 웃다가 훌훌 헤어진다. 행복지수를 높여주는 긍정의 마음이 풍요롭던 그 시절. 낙천적 성격들이야말로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물려주신 가장 찬란한 유산 이리라. 시간을 느리게 만드는 고향의 공간 안에서도 나는 향수에 목말라하다가 벼가 일렁이는 현실에 뒤늦게 깨어났다. 여전히 시골의 논밭은 푸르고 평화롭기만 하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내 유년의 풍경은 그렇게 평화로워 행복했다.
밤을 헹구어 놓은 것 같이 마알간 대낮에 나이 든 딸내미가 산책하는 건데도 시간이 늘어지니, 더 나이 든 엄마에게서 걱정되었는지 전화가 온다. 전화를 끊고 아버지께서 늘 서 계시던, 제 주인을 닮은 아버지의 논밭에서 우리 집을 멀찍이 바라본다. 그새 가을 햇살이 우리 집 뜰안에도 수북하다.
그 풍경 속에 당신이 매 순간 그리도 사랑했던 지금도 건강하신 우리 엄마가 계신다. 감사하고 기쁜 마음에 나는 다시금 아이가 되어 폴짝폴짝 엄마에게 달려간다.
(2021. 9. 5.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