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국시

by 지구 사는 까만별


무엇인가를 처음 시작하는 시기치고는, 지나치게 쌀쌀맞은 겨울. 타지에서 바람에게 냉대받을 때면, 겨울에 엄마가 만들어 주던 뜨거운 것이 기어이 내 마음까지 스며온다.


하늬바람은 고고한지라 고향에서도 우리에게 차가웠다. 문풍지를 간지럽히며 기어이 방안까지 내려앉는 날에는, 농사를 쉬던 엄마가 다시 가족을 위해 일을 한다.

밭일을 할 때처럼, 밀가루와 콩가루에 물을 섞어 부지런히 힘을 준다. 반죽을 만든 엄마가 가재도구들을 겨울잠에서 깨운다.

작은방에 조용히 서서 자던 홍두깨와 선반이 급하게 깨어나 방바닥에 눕는다. 잠에서 일어난 홍두깨가 말랑한 반죽을 점점 넓게 펼쳐내는 마술이, 막내 눈엔 그저 신기하다. 엄마가 얇아진 반죽을 살살 접어주면, 이번엔 칼이 마치 기계처럼 정갈하게 국수를 만드는 마술을 완성한다. 엄마가 남겨준 꼬랑지 부분을 들고, 저기 석양을 닮은 군불에 우선 함께 구워 먹는다. 어둠이 익어가듯 저녁이 익어가면, 온 가족이 둘러앉아 재료라곤 배춧잎과 양념과 뜨거움 뿐인 국수를 입에 넣는다. 그 뜨거움이면, 어떤 고고한 바람에도 춥지 않았다.


그때의 손국수가 갈수록 그리운 연유에는, 외지에서 불어닥치는 바람 탓도 있으나, 자다 깬 홍두깨처럼 영원할 줄 알았던 엄마의 국수를 엄마가 더 이상 만들 수 없게 되었기 때문도 있다. 조리법을 잃어버려서가 아니라, 반죽 같은 탄력과 반죽을 만들 수 있는 젊음을 나로 인해 잃어왔기 때문에.


언젠가 젊음을 잃을 나도, 아이에게 내 젊음으로 만든 음식에 대한 좋은 기억을 남겨줄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엄마의 뜨끈한 칼국수는 흉내도 못 내지만, 마음만은 따뜻할 나의 요리로 추위를 많이 타는 내 아이가 한겨울에도 춥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