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초대하는 버스

by 지구 사는 까만별




매일 아침 7시 50분. 우리 동네 어귀에 완행 버스 한 대가 정차한다. 여기에 정차하기 위해 저 버스는 도시에서부터 일치감치 출발하여 피로하다. 그랬기에 떠오르는 해와 달리 이미 지쳐있는 저 버스의 이름은 일상이다.

아침부터 상의 교복에 희고 커다란 카라 부분을 다리미로 눌러 힘주던 작은 언니, 타고 등교할 소중한 자전거 바퀴를 돌려보는 작은오빠, 몇 개의 도시락을 싸면서도 가장 소리 없이 분주한 엄마의 손을 마지막으로 스치며 가방을 메고 나의 일상을 살기 위해 작은 보폭으로 달려간다.


이제 나도 중학생. 이제부터는 버스 타고 가까운 읍내로 통학해야 한다. 집에서 나와 조금 걷다 보면, 나처럼 저 멀리 버스를 기다리는 동네 중고등학생들의 착한 책가방 줄이 나지막한 논밭 사이로 훤히 드러난다. 맑은 날에는 까만 머리의 행렬들이, 비 오는 날에는 알록달록 비로 물든 긴 우산 행렬들이 반듯하게 일상을 기다린다. 행렬 중 한 점이 되어 기다리다 보니, 버스가 도착한다. 버스안내양이 내려서 승차권을 일일이 넘기고서야 점점 빼곡해지는 버스 안으로 탑승한다. 사람들이 일상을 살기 위해, 일상 속으로 들어오는 모습은 마치 콩시루 같아 피로하다.


얼마 전 라디오 음악프로에 엽서 사연을 보내 채택되어 선물로 받은 마이마이 카세트를 꺼내 음악을 듣는다. 치렁한 이어폰으로 음악을 연결하면 콩시루 같은 버스 안도 소풍길이 된다. 버스 내에 사람들의 무표정 사이로, 멀리서 출퇴근하시는 교실의 익숙한 선생님 얼굴들도 나 홀로 음악소풍 차창으로 스쳐간다.


마침내 시골 버스안내양이 버스를 두드리며 오라이~ 짧은 외마디. 버스 안내양이 두드리던 건 단지 버스만이 아니었음을 당시의 버스 안내양도 알고 있었을까? 내 삶을 두드려주던, 일상을 살아갈 수 있게 도와주었던 오랜 등굣길이 굽이굽이 멀어진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굽이진 길 끝에는 학교가 있었는데, 이제는 곁에 굽이진 길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도 삶은 끝나지 않을 것 같이 이어져, 소중한 사람들과 누군가가 닦아놓은 널찍한 도로를 달린다. 버스에 타고 있던 순진한 중학생 시절보다 더 많은 이들이 내 곁에 있기에, 차선이 넓어진 내 삶에 무한히 감사하다.


계속 이어져서 달리는 삶, 그때도 지금도 좋아하는 음악, 그때도 지금도 동경하는 글...

차선이 넓어져도, 버스에서 자동차로 교통수단이 바뀌어도, 일상을 부르는 해를 향해 닿는 데까지 나아간다. 시골의 일상들을 위해 도시에서 일일이 와주었던 일상이란 이름의 완행버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