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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 사는 까만별 Dec 06. 2023

월동

엄마가 옅어져 추운 겨울을 준비하다




우리 엄마는 된장이랑 물김치 다 맛난데, 김장김치는 쪼끔 아쉬운 거 같네.’

 그해  솔직한 평가에도 엄마는 허허 웃었다. 그 여유 있는 웃음과, 아쉬운 맛의 김치를 찾고 싶어 급한 대로 동네를 나섰다.  

   

 그렇다고 도심에 있는 엄마에게 갈 수는 없었다. 엄마의 자취를 만나기 위해서는 엄마가 지내재활병원을 지나 도심의 경계선까지 밟아야 한다. 여름 이후 조금씩 식어가는 자동차 도로의 가로수에는 초록을 떨구어낸 나목만이 홀가분히 도로를 지키고, 앙상한 나목의 마디마디에 바람이 숭숭 드나들며 손목을 잡아당겨 휘청거리는 초겨울 길목.     


스르르르...

어느덧 도심의 소음이 사라진 풍경을 한 겹으로 가로막은 유리창을 잠시 내렸다. 서리 묻은 바깥기온이 훅 끼어 붓듯 차 안이 서늘해진다. 내 콧등에 내려앉는 이 시큰함은 가로수의 앙상한 팔을 보아서일까. 아니면 겨울 어귀에 만난 편도 2차선 도로에 뿌연 윤기의 감나무를 보아서일까. 그것도 아니면 이즈음에 늘 먹던 뜨끈한 한 그릇이 그리운 것일까. 밤새 말갛게 씻겨낸 아침에도 주황색 전구를 켜둔 감나무를 스치며 알싸하고 매캐한 고향 내음이 밀물처럼 밀려든다.   

  

모두가 알지만, 그렇기에 누구도 주목해주지 않는다-나에게도 월동을 준비하기 위해 유달리 따스한 날이 세시풍속 마냥 있었다. 고향집 앞 골목 감나무가 스스로 할로겐을 켜는 겨울 초입이면, 엄마는 여느 집 마당 풍경처럼 배추와 무를 수북하게 소금에 절여 나른해질 때까지 재웠다. 엄마 스웨터를 닮은 커다란 고동색 다라이도 매콤한 양념에 오래도록 배어갔었다. 서산에 물들어가던 노을도 다라이에 담겨 짠맛이 깊어졌다.

     

세월이 흘러 지구 온난화와 김치냉장고가 함께하는 또다시 겨울.  몇 해 전부터 엄마 대신 큰언니가 엄마에게 고향의 음식을 배워가기 시작했다. 엄마의 접시는 큰언니의 손 위로 그렇게 이어졌다.

 그렇기에 엄마가 급히 침상에 누웠어도, 엄마의 요리가 끊어지는 일은 없었다. 친정 대신 큰언니의 집에서 세 자매가 겨울 채비를 한다. 언니네 집 길목에서 오래전 엄마에게서 맡아온 겨울 내음이 무심히 재연된다. 마당 대신 정남향의 고층 베란다에 햇살이 쏟아지며, 오늘의 품앗이가 시작된다. 부서진 햇살 파편이 거실까지 살살 기어올라 노동하는 등어리들을 데워주었다.

      

 한평생 엄마의 살과 뼈를 갉아먹던 비정하도록 고단하던 엄마의 시계...

 부지런히 돌아가던 시간은 올해 초부터 엄마 손목에서 눈에 띄게 느려져간다. 올겨울엔 김치 따로 안 담글 거라던 1년 전의 엄마 음성이 군불 마냥 포근하여 올해의 서늘함이 차기만 하다. 동면에서 깨어난 엄마는 여전히 언어를 기억에서 살리지 못하고, 자식보다 문병 온 자식이 가져온 간식거리에 더 관심을 보이는 엄마에게만 느려진 시간. 그러나 농한기인 한겨울에도, 인생의 농한기에도 부단하던 당신의 시간들이 아래 세대에 의해 다시 식탁 위에서 굴러가기 시작한다.


 한겨울이면 큰언니는 엄마의 장독대에서 지글지글 톡톡 터지물김치를 김치냉장고에서 꺼낼 것이고, 작은 언니는 엄마에게 배운 빨간 식혜에다 볶은 땅콩을 올려 부지런히 손님상 위에 내어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매일 다른 식탁 위에서 밥을 먹으며 살아가면서도, 엄마가 오래 풍겨낸 시간으로 식솔들의 배를 함께 채운다.

 한순간도 자식을 마음에서 내려놓지 않던 다정한 엄마의 시간은 지난 겨울 잠시 멈춰버렸지만, 자식들의 식탁 위에는 엄마의 밥 냄새로 엄마의 시간을 매일 기다릴 것이다. 각자의 김장독을 싣고 귀가하는 도로에 깔린 겨울 애상에 조금 더 기온이 내려가고 있었다. 이제 더 추워질 겨울, 언니네 김치가 엄마  보다 맛이 좋아 한숨으로 입김이 점점 길어져 간다.









P.S   엄마의 사랑을 이어 사랑을 베푸는 큰언니의 한 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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