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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 사는 까만별 Mar 04. 2024

탱고-부에노스아이레스의 음악은 문학의 날숨을 쉰다



#1

 오래전 꿈을 안고 바다를 건넌 노동자들은 마침내 바다의 끝에서 대륙을 만났다. 더 이상 선원이 될 필요가 없었던 이들은 배를 칠하고 남은 원료와 페인트로 자신들의 새로운 집을 칠해나갔다. 럼주 위에서 선원의 노래로 불리었던 아르헨티나 드림이 석양 위에서 가지각색으로 칠해진다. 그들의 간절한 손으로 칠해진 알록달록한 등대.

전원 페인트가 묻은 가족의 손들이 기도를 하며 얼룩진 손 위로 볕이 내리쬐길 바란다. 그 기도에 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인간에게 태초부터 춤을 추는 방법을 처음부터 심어두었다. 고단하고 서러웠던 노동자 삶의 여백에 춤이 그려지기 시작한다. 굴곡진 삶을 노동요로 대신하고, 격정적이면서도 우아한 춤선이 기적이 되어 항구도시의 시간을 연장해 간다.   

   

 삶도 덩달아 출렁이는 항구에서 고단함을 위로하고자 태어난 탱고 소리는 이민자를 따라 덩달아 성장하며 도심으로 번졌다. 부둣가를 무대 삼아 추던 춤은 어둠이 말갛게 씻겨진 대낮의 길거리에도, 휘영청 달밤 아래 주최된 공연장에서도 여전히 건재하다.     



#2

 길거리의 군중에게 마음 쓰지 않는 한적한 공간에서 나도 마음껏 춤을 추고 싶었다. 달처럼 지구 반대편으로 훅 떠나보았다. 은은한 달빛의 끝은 작지만 오래된 탱고 바를 가리켰다. 체리색 나무 문틈 사이로, 가로등 불빛처럼 밤을 밝히는 탱고의 선율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노래에 맞추어 춤추는 실내의 정경이 유리창에 반사되어 사라져 가고 있었다. 마치 모두가 잠든 깊은 밤이면 몰래 살아 움직이는 벽에 걸린 사연 많은 그림처럼, 노래가 끝나면 미련 없이 흩어질 사람들처럼...   

  

 겁이 많은 나는 기질을 잊고 행위에 이끌려 탱고 바의 구석진 자리에 조심스레 앉았다. 밖에서 바라보는 것보다 더 협소한 이곳은 고막의 용광로였다. 가수의 호흡과 경청하는 사람들의 숨소리까지 귓불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걸쭉하게 소리를 뽑아내는 여가수의 한스러운 가닥들은 세상의 사사로운 매듭을 풀어헤쳤다. 노래와 박수가 끝나고 사회자가 다음 순서를 말한다. 의자에 앉아있는 객 중에 무작위로 선택받은 자들이 무대 위로 올려졌다. 무대 위로 올라갈 것이라고는 상상도 안 해본 나 역시 어느 순간 사람들의 너그러운 미소 앞에 서 있었다.

    

 탱고 춤을 배운 적도 없는 내가 지구 건너 한켠의 작은 무대 위에 있다. 이 밤을 이끄는 아름다운 선율의 활만이 나를 위태로이 지킨다. 애초에 내게 기대조차 없을 너그러운 시선 앞에서 무엇을 더 주저할까. 난 나와 다른 색의 홍채를 지닌 또 다른 이방인과 손을 맞대었다. 스텝이 맞을 리도 없지만 우리는 활 위에서 이미 자유의 미소를 짓는다. 여유로운 눈빛과는 대조적으로 엉성하게 꼬여만 가는 스텝 위에서도 서로를 향한 웃음이 늘어간다. 찰나의 춤선 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데 어찌 인생의 연주에 한 올의 실수조차 없기를 바라겠는가. 세상의 사사로운 매듭을 고쳐 묶는 방법을 한 박자씩 배워간다.   

  

 산마르코 광장에 자리 잡은 오랜 카페에 자랑처럼 걸린 대문호의 발자국보다, 오늘의 탱고로 흘린 땀방울에 삶의 원동력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내 안의 시들어가는 세포들이 음악의 봄을 맞아 파릇파릇 소생하기 시작했다.     

 

 그날 입은 긴 기장의 스커트만이 낯선 탱고바에서의 기억을 공유한다. 가장 격정적이고 우아한 선을 만드는 사람들이 비정한 불빛과 무정한 눈빛 사이로 뜨거운 감정과 차가운 이성을 견인해 간다. 역사라 부르기엔 너무도 선명하고, 인기라 부르기엔 너무도 많은 시절을 경유한 빛바래도록 선명한 인간의 선들이다.    

 






              




# 이 글은 실화가 아니며, 아르헨티나 탱고 영상에서 영감 얻어 쓴 글입니다.

(제 소망 목록에 '탱고 배우기'가 있을 정도로 탱고 춤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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