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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 사는 까만별 May 09. 2024

바람 부는 밭에 바다가 반짝인다

7학년 1반 국민일기




 인산인해의 공항에서도 내 아이들의 웃음과 목소리는 바람처럼 살갗에 닿는다. 그 바람을 이정표 삼아, 공항이라는 낯선 곳을 걷는다.

들판처럼 펼쳐진 공항에 다섯 개의 가지가 그루터기 아래로 모여들고 있다. 각자의 가지에 내가 모르는 사이 꽃을 피워, 저마다 소담한 열매를 보살핀다. 제각기 다양한 꽃들이 아름다운 정원. 열매를 통해 젊은 시절의 내 가지들이 겹쳐 보인다. 언젠가는 저 가지들도 열매의 그루터기가 되겠지... 나는 말없이 미소로만 정원을 바라보았다.


 가지들이 열매를 극진히 기르는 것과 달리 나는 바빠서 정원사 역할도 제대로 못해줬다. 그럼에도 낯선 장소 아래, 모든 가족들이 무사히 모일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 역시 난 과분한 사랑을 받고 살아왔다. 가지에 겹겹이 쌓인 잎이 마침내 꽃을 이루듯, 그때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간절한 손들에 의해, 한 사람의 삶은 이루어져 감을 나는 믿기에...


 저 가지와 열매들은 나의 칠순을 축하하기 위해 모여주었다. 우리 가족 21명 전원이 태국으로 가는 길. 표정들이 풍선처럼 가볍다. 그 기세로, 우리는 풍선처럼 날아올라 낯선 땅에 도착했다. 우리 가족처럼 따뜻하고 뜨거운 햇살이 겨울에도 내리쬐는 곳.  21명의 가족애로 데굴데굴 굴러가는 관광버스가, 21개의 풍선이 하늘로 날아가버리지 않게 지켜주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신난 풍선. 다시금 바람이 들어가 쭈글 하던 할아버지 피부는 다시 소년이 되었다. 머리에 하이바같은 걸 쓰고 바닷속을 보거나, 바다 위를 가르는 낙하산을 타기도 하고, 코끼리 위에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살아내는데 바빠서 평생 누리지 못한 것을, 풍성한 꽃밭과 함께 누리는 지아비 모습이 내가 태어나서 받은 가장 귀하고 좋은 선물이다.


 여행 마지막 날 밤, 숙소 식당에서 우리 가족끼리 나의 칠순 생일잔치를 치뤘다. 케이크와 꽃다발 속에서 큰아들이 편지를 읽는다.

온 가족이 눈시울을 붉히던 따뜻한 밤. 고희의 순간이 되어서야 삶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을 맞는다. 그 시절의 젊음을 뺏겼어도, 그래서 나의 열매들을 제대로 가꿀 시간이 없었어도, 그루터기같이 아이들을 올려다볼 수 있는 지금...

나는 사빈처럼 세상에 밟히고도 지금 노을에 반짝인다.




 주인 할아버지, 오늘도 놀러 왔어요...

바다 대신 밭들이 파도를 이루는 곳에서 우리 주인할아버지는 그날처럼 반주를 걸치기 시작했다. 붉게 타오르는 노을처럼 얼큰한 얼굴.

 바다에서 저 흥겨운 얼굴을 볼 수 있어 참으로 좋았다. 당신의 화양연화도 먼 나라의 바다에 있었지요...


 갑자기 지아비의 모습이 썰물이 되어 주먹을 꽈악 쥔 내 손가락 사이로 스르르 빠져나간다.








# 『8학년 국민일기』시리즈는 친정엄마의 시선으로 막내인 제가 써보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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