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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 사는 까만별 Jun 06. 2024

나비는 오늘도 문을 두드린다

8학년 2반 국민일기



 평생 바라본 초록색은 내 두 번째 피부색이다. 올해도 겨울을 이긴 초록 새살이 보들보들 세상 밖으로 기어 나오는 걸 기특하게 쳐다본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파도타기를 매년 말도 없이 해낸다. 마치 만물이 소생하는 봄에서 여름으로 잘 흘러간다고 잔치라도 열어주듯이...


 우리 집 마당 라일락 나무 아래서도 초록색 파도가 조금씩 밀려온다. 그런데 의자에 한참 앉아있다 보면, 초대도 하지 않은 손님이 집 앞에 도착해 담벼락 사이로 어슬렁어슬렁 눈치를 보고 있다. 손님은 네발에 흰 부츠를 신은 채 귀를 세운다. 저 네발의 손님을 냅두면, 손님이 부츠 신은 앞발로 흙을 파내기 때문에 상추가 자랄 수가 없다.

"오지 말고 저리가거라." 내 말을 못 알아들었는지 고양이는 다시 흙으로 진입하는 중이다. 나는 상추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일어나 고양이를 쫓는다. 볼멘소리를 하듯 나를 쳐다보는 작은 손님은 내일도 내 타박을 들으러 이 자리에 올 것이다.


 고양이의 시무룩한 마음으로 자란 기특한 초록들은 하루하루 알아서 커가는 게 내 자식을 닮았다. 어릴 적에 목욕시켜주듯이 상추에게 듬뿍듬뿍 물을 주고, 지금 자식들을 향하듯이 무사히 자라주어 고맙다고 말을 한다. 내가 해준 건 그런 당연한 것들 뿐인데도, 자식들은 내가 키운 상추가 시장에서 산 거보다 훨씬 부드럽다고 한다. 상추 하나 가지고 좋다고 말하는 자식들도 저 부드러운 상추랑 다를 게 없는   아이알고 있을까?



 배고팠던 그 시절. 새끼들을 배불릴 수 있는 건 땅에서 난 초록색뿐이었다. 다섯이서 달걀도 없이 초록색으로 배를 채우려니 양은으로 된 다라이에다 상추를 넘치도록 가져와야 했다. 거기에다 밥 넣고 보글보글 된장찌개를 넣고 마지막으로 참기름을 한두 방울을 떨어뜨린다. 참기름 냄새를 맡고 온 건지 작은 다섯 숟가락이 다라이를 두고 쪼르르 둘러앉는다. 자리에 앉고 몇 분 동안은 말소리도 안 난다. 오돌토돌한 양푼이 홈에 알알이 박힌 밥알 긁는 소리들만 달그락달그락거릴 뿐...

 숟가락 소리가 끝남과 동시에 양푼이는 바닥을 보인다. 아이들이 떠나간 속도처럼 순식간이다.



 요즘도 주말이면 내 새끼들이 이 집에 들러 어릴 때처럼 상추 비빔밥을 해 먹는다. 커다란 양푼이는 아니어도 야채 한 바구니를 씹을 때마다 아이들은 어릴 적의 단편들을 음미한다. 두 볼은 배고파도 신기할 정도로 웃음과 행복이 풍족하던 그 시절처럼 볼록한 채로...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는데, 손주가 고양이를 보고 무릎을 굽힌다. '이리 ' 소리에도 나를 보고 휙 떠나버리는 하얀 장화가 손주들은 영 아쉬운 모양이다. 손주들은 내가 뭐라고 안 했으면 주중의 손님을 쓰다듬을 수 있었겠지만, 난 주중의 하얀 장화보다 주말의 내 아이들이 더 귀한데 어찌하랴...



 아이들이 떠난 요일도 잘 모를 어느 평일.

하얀 장화가 또 우리 집을 찾아와 상추를 씻기는 물줄기를 바라본다. 장화는 흙이 물방울에 의해 검어지는 것을 보며 장난을 치고 싶어 걸어온다. 하얀 장화는 오늘도 어떤 조그만 할머니에 의해 내졸겨졌어도, 내일 해가 뜨면 할머니의 자식들 대신에 악동의 가면을 쓰고 담을 기웃거릴 것이다...


 밤에는 말수가 적고 빛바래져 버린 라일락 나무와 내가 밤새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하얀 장화는 검은 흙처럼 따뜻한 문안인사를 하기 위해 서서히 잠에 든다.









# 『8학년 국민일기』시리즈는 친정엄마의 시선으로 막내인 제가 써보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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