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구 사는 까만별 Jun 13. 2024

도시의 가로등이 시골집을 비추고

8학년 2반 국민일기




 도심의 병원에서 다시 막내 집으로 가는 차 안. 내가 멀미할까 봐 막내가 내려준 창문 틈으로 들어온 뜨거운 도로의 후끈한 공기와 차 안의 찬바람이 뭉근하게 섞인다. 이것저것 검사해본 병원들은 '생각보단'이란 말을 많이 했다.

'혈관도 연세치곤 생각보단 괜찮아요, 보청기 다시 설정하면 자식들 말도 생각보단 잘 들릴 거예요...'

 희소식은 의사 선생님 방에 있는 푸른 난초와 닮았다. 긴장감 넘치는 회색 병원에서도 이 소리를 들으면, 초록색 넘실대는 시골길을 걷듯이 다시금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병원에 갈 때는 출근길 도로 위에 빽빽한 차들만 보였는데, 이제는 도로 옆 꽤 키가 큰 가로수들이 보인다...


 이제 막내 마음도 편해졌겠다. 막내 집에서 하루 더 있다 가기로 했다. 막내가 티브이로 '집으로'라는 영화를 틀어줬다. 나는 지금 막내 집에 와있는데, 영화에서는 손자가 할매 집에 와 있다. 우리 손주와 달리 철없는 손자를 보니 쥐어박고 싶기도 하고, 말도 못 하고 산골짜기에 혼자 사는 할매가 불쌍키도 했다. 영화에선 딸내미가 지아들을 맡기고 가버리는데, 나는 딸내미 집에서 같이 영화를 보고 있다.

 '저 할매가 불쌍타.'


 해질 무렵 둘째 딸이 육회비빔밥을 사들고 와서 저녁으로 잘 먹었다. 딸내미들이 운동 나선다기에 보내고 손녀와 나 둘이 남았다. 같이 요거트를 먹으며, 손녀가 제 엄마 이야기를 종알종알한다. 여기는 시골보다 가로등이 많아서 해가 져도 강아지랑 산책하는 동네 사람들이 많단다. 주파수가  맞아 조금씩 지지직거리는 보청기 끝없이 내게 말을 건네기에, 나는 간간히 덜 들리는 손녀의 모습을 해가 지도록 바라보았다. 밤에도 낮처럼 환한 동네에서 살아가는 딸들의 모습에 안심을 하면서...

두 딸이 돌아와 다시 환한 도시의 여름밤은 웃음으로 한참 더 익어갔다.




 다음날, 집으로 돌아가려고 신발을 보니 신발에 장식이 붙어있다. 편해서 제일 자주 신지만 예쁘다고 하기는 힘든 신발에, 내가 자는 사이에 손녀가 몰래 꾸며놓았다.

저희의 날개가 되어주시고,
든든히 지켜주신
꽃 같은 마음의 할머니.
언제나 1등이에요!


 손녀가 자기 전에 적어놓은 장식의 의미...

고운 생각으로 밤늦게 새겨놓은 좋은 의미를 신고서, 그 손녀가 직접 만들어 전해준 또하나의 특별한 상장과, 부상으로 받은 색칠 그림책과, 막내가 처방받아준 약봉지와, 둘째 딸이 직접 만든 빠알간 식혜를 들고 집으로 다시 간다. 손녀가 신발에 심은 의미를 매일 신고 텃밭에 나가면, 나는 집에서도 자식들과 같이 있는 셈이다. 해가 떨어지면 어두컴컴한 동네에, 도시에서 받은 작고도 거대한 가로등이 우리 집까지 반짝반짝 빛을 낼것이다.


 나는 8학년 2반에 혼자 있는 학생...

많은 담임 선생님이 우리 집을 빛내고, 나는 우리 집의 보물들을 매일 깨끗이 닦아 지킨다.










# 『8학년 국민일기』시리즈는 친정엄마의 시선으로 막내인 제가 써보는 글입니다.











이전 16화 나비는 오늘도 문을 두드린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