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을 올린 나는 바람 같았다. 하늬바람처럼 잽싸게 엄마 곁을 떠나, 아무것도 없는 황야를 향해 날아갔다. 아무것도 없는 집인지 모르고 도착한 그곳에서도 나는 결국 멀리서 온 바람이라, 일하지 않을 때는 집을 조용히 겉돌 뿐이었다.
서쪽 동네에서 온 나는 봄에 찾아와 태양이 길게 드리워지는 동안은 좁은 초가집에 응달처럼 있었다. 세간 살림 대신 시부모에 시누이, 시동생들이 가득 들어차 나를 쳐다보던 새로운 집에서 나는 바람처럼 식어갔다.
그런 집에도 내가 태어난 겨울이 찾아와, 산천이 차갑도록 고요하게 내려앉았다. 서서히 잦아들어 나무에 정착한 나라는 바람과 닮아있다. 색깔을 잃고 눈이 쌓여가는 지붕처럼, 형형색색의 꽃수도 하얀 눈에 덮이며 마을의 일부로 서서히 조난되고 있었다. 시커먼 가마솥에 밥을 하면 올라오는 하얀 연기에 흘린 눈물들은 새로운 고향의 풍경이 되어 이방인에게 저녁 시간을 알릴 뿐이었다.
바람같이 투명하게 살아온 시간들 속에서도 반가운 봄은 찾아왔다. 방 두 칸에 열 명 가까운 시댁 식구들과 지내던 나에게도 어느 순간 뱃속에 처음으로 내 식구가 꼬물꼬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외지인이었던 내가 이 집에서 내 가족을 만든다. 달이 차는 것처럼 점점 불러오는 배를 보면 마음이 부풀었다. 비록 속은 늘 멀미하듯 어지럽고, 새콤한 과일이 먹고 싶고, 피곤해서 눕고 싶어도 바람처럼 투명하게 내색도 못했다. 그렇게 부른 배로 밭일을 했어도 바람에게 아기 바람이 생긴다는 건 역시 행복했다.
하늬바람만이 고고하게 활보하던 겨울 끝자락에 아기는 세상에 나오고자 자꾸만 문을 두드린다. 처음 겪는 산고는 지금까지 겪은 어떤 고통보다 아득해서 두려웠다. 겨울에 나를 낳은 엄마처럼 나도 겨울에 엄마가 된다. 엄마를 떠나갔어도, 엄마가 되어가는 중이어도,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다.
아기는 시어무이 손의 도움을 받아 마침내 세상에 나왔다. 외로웠던 나를 배부르게 했던 아이는 지아비를 꼭 빼닮은 아들이었다. 첫 손주를 바라보며 시어무이도 지아비도 좋아했다. 드디어 초가집의 일원이 된 난 그때도 그저 바람처럼 조용히 평화로서 자리하고 있었다.
밤이 되어 아이를 안고 물끄러미 바라본다. 나처럼 동지에 태어난 겨울 아이. 이 아이와 함께 있을 수 있는 겨울밤이 길어서 나는 겨울을 좋아하게 되었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를 몽글몽글 끊임없이 데워주는 작은 살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