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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 사는 까만별 Jun 27. 2024

제비歌

5학년 8반 국민일기



 "집형편도 안 좋은데 자식들 많이 낳기만 하면 우에 키우려고 그러냐. 흥부네도 아니고."


 고요한 시골에 다소 이질적인 드르르 소리. 부서지는 건, 옛집의 자재만이 아니었다.

 30년 가까이 새끼들을 키우며 살아온 흥부네 둥지는 집터만 남았다. 집터 위에 올라갈 새로운 집을 상상하며 지아비는 쿵쿵 토대를 다지는 소리를 듣고 있다. 소리 옆에 있는 지아비의 심장소리가 대신 들리는 듯했다.


 재료를 고르기 위해서 지아비는 도시로 직접 나가 마음에 드는 집을 물색했다. 도시를 돌아다니다 마음에 든다 싶으면, 목수에게 "벽돌은 이 집이랑 비슷한 걸로 해주이소."라고 주문하는 식이었다. 그렇게 선택된 창문, 대문이 집터 위에 하루하루 합쳐지며 집이 되어갔다.


 집이 마무리 작업에 들어가면서부터 나는 지아비와 새로 들일 가구를 보러 도시를 구경 다녔다. 시집올 때 못해본 혼수를 이 나이가 되어 사러 나간다. 옆에 부부는 가구처럼 젊은데 우리는 가구만 젊다.



 마침내 안팎으로 채워진 새로운 집.

안방의 자개장, 천장의 화려한 조명, 아치형의 유리창, 함부로 못 들어올 것 같은 위엄 있는 은빛 대문... 창밖의 햇살이 빛내주는 이층 집은 구석구석 아주버님네 집을 닮아 있었다.




 아주버님은 놀부처럼 못된 분은 아니었지만, 놀부네처럼 여유가 있었다. 도시에서 이층 양옥에서 사는 아주버님에게, 많은 식구들과 복닥복닥 사는 우리 가족이 흥부네처럼 보였을 거다.


 흥부네는 동화처럼 제비를 만나지는 못했다. 그래도 동화처럼 오래오래 열심히 살았다. 그래서 인심 좋은 놀부로 거듭난 흥부네는, 마침내 동화와는 거리가 먼 드릴 소리로 옛집을 부수었다. 톱으로 박을 여는 대신 톱질로 새 집을 지어내면서. 집이 허물어지면서 튀어나온 감정들은 결코 동화에서 나오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놀부네를 닮은 새 양옥집 안에, 지아비와 나의 첫 숨이 크게 들어간다. 흡족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우리는 서로 아무 말 없이 한동안 서 있었다. 밖에서 우리 부부의 테이프 커팅식을 바라보던 제비 한 마리가, 한참을 마당에서 지저귀다 다른 흥부를 찾으러 날아가고 있었다.









# 『8학년 국민일기』시리즈는 친정엄마의 시선으로 막내인 제가 써보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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