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와 옛날이야기를 하면 살아왔던 많은 집들이 겹쳐진다. 결혼 전 친정식구와 살던 장산집, 시집와서 시댁 식구 여럿이서 살던 초가집, 그다음으로 이사한 기와집, 그리고 지아비와 살다가 지금 혼자 살고 있는 양옥집까지...
나는 기와집에서 다 같이 오래오래 살고 싶었다.
시집와서 초가집에서 살면서, 우리 집에서 바로 보이던 앞집이 가장 부러웠다. 기와 지붕으로 돼서 물도 안 새고, 'ㄱ'자로 생겨 두 칸짜리 우리 집보다 훨씬 넓고, 방 사이에는 시원한 대청마루가 있었다. 무엇보다 부러웠던 건 바로 집 마당에 있던 우물이었다. 하루에 몇 번씩 동네 입구로 우물물을 무겁게 길으러 다니다 보면, 그 집 마당에 단정하게 놓인 물 바가지 하나가 너무도 부러웠다.
그러다 앞집에 사는 분들이 이사를 가고 싶어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당시 나 말고는 우리 집에서 이사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없었다. 가만히 있으면 평생 이사 못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여태 내가 따르던 지아비를 역으로 설득하고서야 그 집을 붙잡았다.
마침내 빚을 내서 앞집 기와 지붕 아래로 들어가던 날. 우리 집이 된 반질반질한 대청마루에 앉아 새 집을 바라본다. 초가집에 있던 짐을 다 넣어도 공간이 남아돈다.
아이들이 새로운 방에서 즐겁게 뛰어놀고, 대청에는 바람과 손님들이 통한다. 손님들이 가고 고요한 집. 나는 마당 구석에 자리 잡은 우물로 간다. 끝을 알 수 없도록 깊고 깨끗하다. 그 깊이 끝에 찰박이는 물이 우리 가족의 밥이자, 나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방이 있고, 대청이 있고, 비가 안 새고, 우물이 있는 이 집에서 오래오래 다 함께 지낼 수 있다면...
나의 큰 바람은 빚을 갚기 위한 농사일도 고되지 않게 만들었다.
훗날 막내가 지금 사는 양옥집과 기와집 어디가 좋냐고 묻길래 주저 없이 대답했다. 기와 지붕 아래 우리 가족이 같이 살 때가 제일 행복했다고. 과거로 돌아갈수 있다면 그시절로 가고싶다고... 2층 양옥이어도 가족이 다 같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냐...
만약에 다음 생에 집을 고를 수 있다면, 작은 아파트에서 지아비와 오손도손 둘이 살아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출근하는 지아비를 현관에서 배웅해주고, 보글보글 맛있는 저녁을 준비해놓고 퇴근하는 지아비를 맞이하는 그런 소꿉놀이 같은 삶... 부부가 서로를 챙기고, 자식들 꼬물꼬물 기어 다니고 아장아장 걷는 걸 마음껏 볼 수 있는 작은 신혼집. 그런 집이라면 대청과 우물이 없어도 한번 살아보고 싶다.
오늘도 대청이 있던 터 위에 앉아 메워진 우물을 생각한다. 이젠 수돗물에 정수기까지 생겼지만, 마음의 거울이 없어진 빈집이 오늘은 조금 허전하다. 대청에 사람이 오가는 주말까지 나는 조용히 집터의 회상을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