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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 사는 까만별 Sep 22. 2024

선생님께

지금 만나러 갑니다



 선생님. 평안하신지요.


 단풍이 그러하듯, 작금의 제 마음은 연연히 목단화 빛으로 물들었습니다. 어디로 갈까 마음을 서성거리던 제가, 못 가본 길들을 보며 낙엽처럼 아쉬움이 바스락대는 만추를 맞았습니다. 다 마른 종이만이 바스락 부서질 듯 처연하여, 추억에 잘 어울립니다.


 연연한 복사꽃이 흐드러지던 선생님 계신 고향에도 지금쯤 짙은 커피 향기가 수북하겠지요. 한 소설가의 말을 빌려, 벚나무 아래 긁어모은 낙엽더미가 속의 것부터 푸슥푸슥 타다 보면 볶아낸 커피 향이 난다고 하셨지요. 그 덕에 매일 아침 저는 가을을 들르다 돌아오곤 했습니다.

 가을에 훌쩍 있다가 오면, 과거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가고 싶은 방향의 끝에는, 선생님이 손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그 손이 환영인지 작별인지 구별할 수가 없어 내 오늘은 기어이 반대방향으로 걸어볼까 합니다.


 그곳에 중학생인 제가 있습니다. 분필통 뽀얀 분내가 교실에 화악 퍼지던. 약간 탁한 공기 속에서, 학생의 시선은 칠판 위의 여행으로 갑니다. 선생님이 서있던 교실에는 언제나 언어가 눈이 되어 내렸었지요.

 그 눈송이는 학교 밖에선 피부에 스몄습니다. 살짝 차가워진 볼은, 가로수 꽃들의 표정을 민감하게 알아차렸습니다. 살짝 상기된 볼로 매일 학교로 여행을 가는 길, 제 봄날은 눈꽃이 내리는 백색이었네요.


 언젠가 교무실에 저를 조용히 부르시고는 나중에 꼭 작가가 되어주면 좋겠다 해주셨지요. 막연하게나마 반짝이는걸 그때 처음 품어봤습니다. 그 눈송이는 생각보다 깊게 스몄는지, 오늘의 이 편지는 선생님 만의 것이 아니네요...

 방학이면 우체부 아저씨가 전달해주던 사제만을 위한 편지가 오늘에 닿았다고 생각합니다.


 수줍게 웃던 그날의 소녀는 여름과 헤어졌습니다. 마음만은 봄이라는 상투적인 표현은, 자신은 과거에 갇혀있다는 다소 슬픈 뜻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이하게도 저는 과거를 쓰면서 미래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과거를 쓴다는 시점에서 미래를 살지 못하고, 소녀에 머물러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허나 피부에 스민 언어들은 여전히 힘이 있어, 제 글을 구성하곤 합니다. 저는 제가 봄을 겪었기에 가을을 맞이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오늘, 중학생의 소녀가 다시 선생님께 우체부 없는 편지를 써내려 가는 건 아닐까요.


 과거와 현재라는 두 명의 존재에게 받는 편지는 어떠했나요? 시간이 흘러 많은 존재를 만나는 건 생각보다 좋은 일이었습니다. 선생님도 앞으로도 많은 존재를 만나가시기를.



 추신 - 선생님, 제 언어가 되어주셔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말이 제 말이 되어 편지지 위에서 꽃잎처럼 말라갑니다. 제 마음은 봄꽃보다 어두운 빛으로, 꽃보다 밝은 삶을 노래합니다. 어찌 보니 그러한 특성은, 저의 계절인 가을을 닮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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