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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 사는 까만별 Nov 14. 2024

손수건은 젖기 위해 태어났다    

 



헤어지자 보내온 그녀의 편지 속에

곱게 접어 함께 부친 하얀 손수건

고향을 떠나올 때 언덕에 홀로 서서

눈물로 흔들어주던 하얀 손수건...’


 통기타 줄 사이로 흥얼거리던 사춘기 중학생의 하얀 손수건이 고향의 햇살 아래 바싹 말라가고 있었다. 그렇게 소녀의 수건이 햇빛에 마르자, 소녀의 가방에는 하얀 수건 대신 숙녀 특유의 레이스 수건이 들어있었다. 향수를 뿌린 레이스 수건에는 작고 큰 두근거림이 이어졌고, 어느새 숙녀의 배는 손수건으로 가려지지 않을 만큼 불러있었다.     


 숙녀를 닮은 보드라운 피부의 아기를 위해, 숙녀의 서랍에는 자신의 옷가지 대신 하얀 가재손수건이 쌓여갔다. 아기의 입에 묻은 음식이나, 아기의 땀은 언제나 아기의 피부만큼 폭닥한 순면으로 닦기를 숙녀는 고수했다. 아기가 낮잠을 자는 시간 동안, 숙녀는 잠들기보다 가스불을 켜기를 택했다. 가스불로 데워진 찜통에는 매일같이 아기의 흔적이 잔뜩 묻은 손수건들이 가득 삶아졌다. 아기의 분내만 남아 다시 새하얘진 손수건은 햇볕을 쬐며 다시 아기의 피부에 닿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축축하다 조금씩 말라가는 옷감처럼 숙녀의 손도 서서히 말라갔다. 그리고 마르고 갈라지는 그 손에 힘입어 아기는 햇빛의 힘으로 조금씩 자라났다. 중년이 된 녀는 레이스 손수건을 즐기던 시절을 회상하다, 기타를 치고서 손을 닦던 손수건을 매개로 자신의 유년에 보았던 빨랫줄을 향해 조금씩 실을 꿰었다.     



 고유의 빛깔을 태워 낡음을 덧칠하는 햇살은 고향집 방안에 밀물처럼 스미곤 했다. 두꺼운 이불을 지키며 조는 오래된 장롱조차도 서랍장 속에 고목과 대비되리만치 새하얀 가재수건 다발을 몸에 품고서 낡아가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엄마의 손은 언제나 축축했다. 해가 지도록 골목에서 놀던 아이를 불러 밥 먹일 때도, 잠들 때 머리카락을 만져 귀 뒤로 넘겨줄 때도, 배 아프다 엄살 부리면 ‘엄마 손은 약손’이라며 쓰다듬어 줄 때도 그 손은 늘 축축했다.

 자식과 시댁식구가 많았던 엄마는 가에 커다란 바구니를 자주 들고 갔다. 빨랫방망이 두드리며 흙먼지가 강물에 떠내려가는 걸 바라보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빨랫줄에 무거워진 물기를 하나씩 널었다. 누런 흙마당을 가로지르는 빨랫줄엔 매일 수십 벌의 옷감이 나부끼고 있었지만, 그렇게 많은 옷감이 햇빛에 바싹 말라도 엄마의 손을 닦아주기 위한 손수건은 없었다.  

   

 햇살과 바람에 수건과 함께 매일 말라가는 과정에서, 엄마는 자꾸만 가재손수건처럼 얇아지고 해져갔다. 평생 낮잠 한번 자본적 없던 태양처럼 성실한 여인은 얇아지고 얇아지다 다시 아기가 되어, 아기의자를 닮은 휠체어에서 우리를 맞이하다 요람을 닮은 병상에 누워있다. 중년이 된 숙녀는 휠체어에서 습관처럼 웃고 있는 엄마를 위해, 눈곱과 입가에 묻은 음식물을 하얀 손수건으로 조심스레 닦았다. 아기 같은 피부는 아니지만, 이제야 은혜를 갚을 방도를 주는 아기 같은 그녀의 마음을 위해서...     



 병원을 나선 숙녀는 며칠 후 오랜 친구를 만났다. 장소는 다른 친구의 모친상이었다. 실의에 빠진 친구에게  친구는 꽃무늬의 손수건을 쥐여주며  햇빛처럼 온건하게 말했다.

 “내일 어머니 떠나보낼 때 쓰고, 그후로는 목에 감고 다녀...”


 엄마의 수건으로 자라난 우리는 엄마를 보내는 날까지 수건으로 눈물을 닦아낸다. 그 많은 눈물이 다시금 햇빛에 마르는 날은, 친구의 목에는 하이얀 한(恨) 대신 자잘한 꽃이 피어날 것이다. 언젠가 향수까지 뿌려질지도 모르는 꽃무늬 수건의 체취는 레테의 강까지 닿아 친구의 어머니가 보는 강물에 어여쁜 꽃을 띄워낼지도 모를 일이다.     

          







# 이 글은 모친상을 맞은 친구에게 손수건을 건네던 또 다른 친구를 보며 느낀 바를 쓴 글입니다. 친구의 어머니가 건너는 강물에도 평안이 있기를 바랍니다.           

                    








https://youtu.be/6eemox2eOlk?si=K5QWODA7uZFz4bD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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