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잎을 잃고 나목이 된 나무들에게 바람은 찢어질 듯 차다. 그런 12월이 3년 전에도 있었다.
나목들과 달리 연말연시라는 이름으로 겨울을 기념하는 우리들. 그런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그해 나와 친구는 구체적인 약속을 하나 맺었다. 약속은 친구의 말 한마디에서 시작되었다. "우리 3년 후에는 같은 차를 한 대씩 장만하자!" 차종은 물론, 색상까지 세세하게 짜면서 계절과 안 맞을 만큼 따뜻한 이야기를 했다. 살면서 차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 없던 나였으나, 마음속에서는 벌써 새로운 차를 타고 도로 위를 날아다니고 있었다.
3년이 지나, 다시 겨울. 우리의 약속은 절반 정도 지켜졌다. 나는 차를 계약했고, 친구는 그러지 못했던 것이다. 어느 정도 예상되는 바이기도 했다.
약속한 날이 좀 지나서 친구랑 차 얘기를 다시 한 적 있었고 그때 친구가 말을 했었다.
"3년 뒤에 너는 살 것 같은데, 나는 요즘 가계가 좀 힘들어져 어쩌면 못 살 수도 있다. 제안은 내가 해놓고 참..."
정말로 친구는 차를 계약하지 못했다. 그런데 가계가 힘들어져서는 아니었다.
친구는 가계를 관리할 수 있는 몸을 잃어버렸다.
친구의 영혼이 몸을 잃어버린 건 봄이었다. 나의 겨울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사람이었기에, 친구의 실종은 조금 더운 봄날도 얼어붙게 만들었다. 마음의 한파가 시간에 의해 좀 녹은 최근, 영화를 한 편 봤다. 등장인물의 죽음으로 시작됨에도, 등장인물의 죽음 때문에 충격받는 이야기...
저 영화가,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도 마음에 서리가 끼는 나와 너무 닮아 있어서, 겨울에 녹은 물이 눈에서 흘러나왔다.
달릴 차가 없지, 달릴 발이 없을 거라 생각 안 했던 우리에게 세상은 가혹한 변수를 줬다. 미래보다 현재가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그렇게까지 아프게 내리쳐 준 세상. 그런 세상에게 변수를 줄 거다. 서로 다른 세상에 있어도 우리는 같이 달릴 수 있다는, 내가 차를 타고 도로 위를 날 때, 친구는 하늘 위를 달릴 수 있다는, 세상이 준 것과는 달리 희망적인 변주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