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녹는 유화들

by 지구 사는 까만별




모든 것이 내려앉은 고요의 시각, 한 톨의 빛이 어슴푸레한 새벽 역을 경유하고 있었다. 내가 여유 있게 도착하긴 했지만, 초겨울이라 아직 기차역에는 작은 줄기의 빛만이 도달했다. 잠시 앉아 기다리니 내가 탈 기차가 뜨거운 엔진을 차가운 공기로 식혀가며 정시에 플랫폼에 닿았다. 기차 속으로 들어가 예약해 둔 자리에 앉으니 기다렸다는 듯 기차는 매정하리만치 미련 없는 소리를 내며 문을 닫고 목적지를 향해 다시 달렸다. 비정한 정시성 속에서 창밖을 보니, 어슴푸레한 빛이 아침 공기에 밀려 푸르게 흩어지고 있었다. 돌돌 말아둔 창가 블라인드 틈 사이로 얼굴을 기대자 유리는 어떤 파문도 없이 나를 비추었고, 눈 감을 때마다 겹쳐지는 검붉은 빛줄기가 고통 없이 아른거렸다. 나는 자연스레 오늘의 행선지와 관련된 연상들을, 오래전 흑백 티브이 속 은하철도 999를 타고 우수의 표정을 짓던 메텔처럼 행성에 흘러 보내기 시작했다.


우선, 질퍽한 연못 아래로 피어난 수련들을 무한한 시간의 빛으로 하나씩 품던 한 미술관을 기억했다. 거대하지 않아 좋았던 소담한 미술관 화폭 사이로 딸과 나란히 거닐던 시간이 있었다. 커다란 작품 아래, 그림이 수용한 인원만큼 다양한 시선이 뿌려져 흩어지고, 수련을 경유한 그 아래층에는 벽지마다 특정 시간대에 맞추어 풍경과 인물이 고고하게 걸려있었다.

실시간으로 스치는 창밖 풍경을 변화시키는 빛은 마치 화가의 의도처럼 숲 속을 밝히고 있었다. 풍경에 색감을 입히는 저 빛의 효과를 화폭에 담기 위해 누군가 야외에서 빛 아래 이젤 앞에서 사색이 짙었을 것이고, 지금껏 빛바래지 않는 삶의 흔적들을 담아냈을 것이다. 화가라는 이름의 그들이 기차 창가에 일상의 그들과 얼기설기 겹치며 스치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같은 연못 아래서 자라나 타지로 속속히 흩어졌던 나와 친구들을 떠올렸다. 내가 뿌리를 내렸던 타향만큼의 햇빛이 친구들에게도 내리 쬐여졌을까? 햇빛만큼은 푸짐했던 가난하고도 성실한 나의 고향을 벗어나야 했던 작은 수련들. 오늘 친구와 함께 미술관을 볼 만큼의 여유가 있다는 것에 묘한 안도감을 느끼며, 도착 예정 시간에 맞추어 재회할 마음에 팔레트 속 물감이 알록달록 물들어가기 시작한다.


기차가 내려준 낯선 플랫폼에서 낯익은 친구의 얼굴을 오랜만에 조우했다. 학창 시절에 만난 그녀는 여전히 소녀 같은 미소로 나를 반겨주었다. 친구는 뒤늦게 글을 쓰는 나를, 나는 여전히 악기를 연주하고 가르치는 친구를 서로 응원해주었다. 각자에게 주어진 종이에 무엇을 인쇄할지는 본인의 몫이리라. 악보와 원고지에 경험한 변주들을 울리며 살아가는 우리는 그간의 안부를 나누며 미술관으로 빨려 들어갔다.


1860년대 파리에서 만나 인상주의로 출발하여 평생 예술적 교류를 한 세잔과 르누아르가 후대들을 만나기 위해 지구 건너편으로 날아들었다. 아침에 플랫폼에서 나를 반기던 친구처럼, 그림으로 울창해진 한낮의 숲 속에서 세잔과 르누아르가 우릴 반겨주었다. 감각적 아름다움과 조형적 탐구를 각자 녹여서 이견 속에서도 서로 어우러진 공간은 우리를 회상의 방향으로 안내해 주었다. 따뜻한 색감과 부드러운 붓 터치로 빛과 공기의 떨림을 화폭에 담은 르누아르와, 탄탄한 붓질로 풍경의 구조를 드러낸 세잔. 그들이 추구한 고뇌의 공간을 걸을수록 한 점의 진득한 물감 대신 두 사람의 투명한 땀이 느껴졌다.


정적인 물체로도 보여주는 색채의 조화를 통해 일상의 아름다움을 보이는 화가와, 원근법을 해체하여 형태와 공간의 원리를 탐구하는 화가. 글을 좋아하는 나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르누아르가 우선 좋았지만, 친구는 연구를 통해 시각을 연구해 온 세잔에게도 꽤 매력을 느끼는 듯했다. 중요한 건 누가 우월하냐가 아니라, 다른 철학 속에서도 피사체를 통해서 우리 사이에 만들어 낸 고요한 여백에 있었다.

우리가 작품을 통해 각자의 견해로 채워진 마음의 공간을 탐색하는 것은 얼마나 특별한 찰나일까. 과거와 현재 사이를 여행하는 무수한 발자국들을 거치며 우리도 행인들과 섞여 화랑의 통로를 무사히 빠져나왔다.


어떤 풍경 아래에서도 아름다운 인간의 찰나를 행복으로 만들어주던 르누아르의 알록달록한 팔레트가, 시간 여행을 막 끝낸 내 볼에도 작은 홍조를 상기시켰다. 친구는 전시관 옆 기념품 점에서 여운을 기억하기 위해 그림들을 담기 시작했다. 평생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아름다움을 그리던 화가의 빛, 여전히 음악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친구와 삶, 그리고 부족하나마 오늘의 외출을 한 자 한 자 써 내려가는 나의 하루. 영원히 꺼지지 않는 고고한 거장의 빛 아래 일상 속 외출이 오후의 가을볕에 녹아내리듯 유순하게 잘 말라간다. 마치 친구와 헤어지기 전 노을을 바라보며 함께 마시던 커피 향처럼.

두 수련이 함께 자라던 진흙탕에서도 어느새 커피 향이 났다. 집으로 가는 기차에 오른 나는 쏜살 같이 달리는 기차 위에서 이어폰을 켜고 다시금 고고한 타지 생활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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