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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fom Oct 18. 2023

가려진 시간 사이로

#동네

노는 아이들 소리
저녁 무렵의 교정은
아쉽게 남겨진 햇살에 물들고 
메아리로 멀리 퍼져 가는
꼬마들의 숨바꼭질 놀이에 


  차분하고 심플한 건반 연주와 아련한 가사로 시작하는 이 곡은 마치 어린 시절의 어느 저녁으로 되돌아간 것 같은 잔잔하고 따뜻한 느낌을 전달한다. 재택근무를 하던 어느 날 창밖으로 들려오던 초등학교 운동장 아이들의 까르륵 소리에 한동안 잊고 있었던 이 곡이 떠올랐다. 얼마나 오랜만에 들어보았나. 세상 신나던 아이들의 웃음소리. 동네에서 늘 들리던 그 소리를 어느덧 쉽게 듣지 못하게 되었다.  


  어른들은 놀이에 집중할 때 느끼는 아이들의 행복감을 끝도 없는 문제 풀이를 강요하며 빼앗아가 버렸다. 아이가 푸는 문제를 옆에서 보고 있노라면 대체 무슨 목적으로 이런 문제를 만들었을까 싶은 것들이 많다. 그냥 말장난하는 것 같다.  간결하고 핵심적인 내용을 전달하고 이해시키려는 목적보다는 누가 얼마나 빨리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해서 답을 찾아내는지에 온통 힘을 쏟았다. 이를 변별력이라 부르면서. 

 

  이런 문제 앞에서 아이들은 정답을 찾지 못하면 세상 큰일 난 것처럼 온갖 걱정과 우려에 둘러 쌓이게 된다. 삶에 정답이 있던가? 당장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이 시간이 지난 후에 그 의미를 깨닫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  


  내가 중학교를 다닐 때 틀렸던 문제가 있는데 영어 듣기 평가 문제였던 걸로 기억한다. 에스컬레이터에 대한 설명을 들은 이후 맞지 않는 것을 고르는 문제였다.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지선다의 보기가 생각난다. 두 개는 답이 아닌 것이 명확했고 나머지 두 개 중에 하나를 골라야 했는데 나는 그중 '에스컬레이터는 인원수의 제한이 없다'를 선택했다. 이유는 모든 기계는 정격용량 혹은 하중이라는 것이 있을 테고 에스컬레이터의 계단에 엄청나게 무거운 물건과 사람이 올라간다면 고장이 나거나 멈추어 설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정확한 단어까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만약 '인원수' 였었다면 인간의 평균 무게를 고려하여 최소 몇 배를 더 견뎌낼 수 있도록 기계는 설계되었을 테니 아무리 많이 탑승한다고 하더라도 에스컬레이터는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출제자는 내가 고르지 않는 문항이 정답이 되도록 문제를 만들었으리라.  


  재밌는 것은 내가 선택하지 않은 보기가 정답이었고 그것은 기억조차 나지 않으며 대체 출제자의 의도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고 이 문제는 영어실력을 측정하는 것이랑 정말 관련이 있는 것인지? 이 문제를 맞히느냐 못 맞히느냐에 따라 한 과목의 점수가 달라지고 이런 점수들이 모여 등수가 매겨진다. 물론 모든 문제가 논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를 풀어 친구들 간에 우열을 가리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시간이 흘러 우리 아이들이 교육을 받을 때 즈음엔 완전히 달라져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마주한 현실은 그때보다 더 심각해 보인다. 문제의 정답이 하나인 양 강요하고 틀리면 인생이 무너질 것 같은 위협과 좌절감을 심어주는 학교 교육이 아직 이어지고 있고 아니 오히려 더 강화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다. 한편으론 가려진 시간 사이에 숨어 누군가 바꿔주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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