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민하고 내향적인 사람답게(?) 자신에 대한 이해도가 꽤 높은 편이다. 내가 제일 잘 하는 것은 아마도 "딸기쨈 만드는 것"과 "자기객관화"일 것이다. 내가 만든 딸기쨈은 김치냉장고에 넣어두면 일년이 넘도록 골마지나 곰팡이 없이 늘 최상의 맛과 향이 나고, "자기객관화"라는 나도 정확한 뜻은 잘 모르는 어려운 말을 가져다 놓긴 했지만, 평생 살면서 주제파악 하나는 잘 해왔다고 자부한다.
나.오.이의 1부 1차 퇴고를 겨우 마치고, 슬슬 2부 퇴고와 함께 아직 그리기 못한 2부의 15장의 그림을 그리려고 마음의 준비를 하면서(그림을 그릴 때는 늘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작업들을 되돌아보았다. 사실 나는 2021년 새해가 되면서 마음이 조급해져 있었다. 이건 누가 하라고 시킨 일도 아니었고, 약속된 일도 일체 아니었던 데다, 그냥 한 마디로 말하면,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인 일이었기 때문에, 남는 시간에 슬슬 쓰고 그리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내가 본 서울의 오래된 장소들은 그 사이 또 변화하고 있었고, 내가 무슨 대단한 대하소설을 쓰는 것도 아닌데, 4년, 5년을 마냥 붙들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어서 이제는 나.오.이로부터 좀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나는 애초에 이것을 1인 출판물로 기획했었다. 온전히 나 개인의 경험이었을 뿐, 누가 내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줄 것인가, 더구나 한양도성을. 게다가 나는 책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기도 했다. 회사 다닐적 여러 차례 보고서(라고는 하지만, 단행본과 비슷했던)를 만들고 인쇄해 본 경험이 있던 지라, 막연히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1인출판사를 만들어 '가내수공업'식으로다가 혼자 쓰고, 그리고, 만들어, 팔고, 북치고 장구치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이건 아닌가?) 한번 해보자 했던 것이 바로 이 일이었다.
사실 1인출판물로 할지, 출판사 투고를 할지는 늘 반반의 마음이었다. 그러나 퇴고과정을 거치며 자신이 너무 바닥까지 내쳐져버렸고, 관련 경험도 없는 내가 1인 출판을 한다는 건 아이들 밥마저 챙겨줄 수 없다는 걸 의미했다. 여하튼 나는 2부 퇴고를 시작하며 다시 한 번 나.오.이에서 내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주제와 메시지와 차별성과 문체와 그림의 퀄리티와 이런 저런 것들을 전반적으로 점검하면서 올 해 초부터 조급해왔던 것을 내려놓고 다시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모드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질곡의 시간" 같은 건 없었다. 그저 좋았고 수고로웠던 기억과 경험이 있었을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분명히 해두고 싶은 것은 있다. 누구에게나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그런 일들이 있다. 사람들은 그런 일들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 정말 궁금하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을 "할 때", 그것은 적어도 나에게는 간절한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