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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호정 Apr 04. 2021

"기행문도 오래 쓰면 패턴이 생겨요"

부제 : 퇴고를 마치는 그날까지 퇴고는 계속되어야 한다.

잊을 수 없는 인터뷰 소개 

2017년 6월 3일 아이들과 첫 답사를 하고 와서, 한창 답사의 재미에 빠져 있을 무렵 한 권의 책이, 아니, 두 권의 책이 출간되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유홍준 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 서울편 1,2"였다. 


그 두 권의 책이 무슨 말이 필요하겠나. 나는 총알배송으로 책을 받아 조금 과장하면, 달달 떨리는 손가락으로 책장을 넘기면서 이분이 혹시 나 때문에 책을 쓴 게 아닌가 전화를 걸어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재미있게 잘 읽었다. 그렇게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꽤 시간이 흘러서 우연히 이분이 조선비즈와 인터뷰했던 기사를 읽게 되었다. 유명하신 분, 유명한 책답게 분량도 만만치 않은 긴 인터뷰 기사였다. 


그 인터뷰 기사는 나에게는 좀 충격적인 것이었고, 어쨌든 그것을 인쇄해서 옆에 놓고 "너덜너덜"까지는 아니고, "구깃구깃"해질때까지 여러 번을 읽고 또 읽었다. 그 인터뷰 중에서 나는 이 말에 완전 꽂혀버려서 한동안 좀 멍했던 것 같다. (꼭 전문을 읽어보시길 바란다.)



처음에 빵 치고 들어가기도 하고, 도입부에서 느슨하게 들어가서 휘몰아 끝내기도 하죠. 그 수법이 능수능란하다는 거죠. 허허. 모든 챕터가 단편소설같이 기승전결로 딱 떨어지도록 했어요. 사실 기행문도 오래 쓰면 패턴이 생겨요. 그 패턴 안에 불국사도 경복궁도 집어넣으면 뚝딱 나올 수도 있어. 난 그런 전형적인 게 싫어서, 모든 꼭지의 콘셉트를 달리했어요. 청중에게 해설하는 형식도 취하고, 혼자서 거닐기도 하고, 문헌 속을 헤집기도 했지요.



부끄럽지만, 나는 말하면 깜짝놀랄만큼 오랫동안 기행+일상+도시+답사에관한 짤막한 에세이를 써왔다. 그리고 그의 인터뷰 기사 중 저 말을 읽는 순간, 나만큼 그가 말한 "패턴"의 의미를 온전하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적어도 그 순간) 이 세상에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우리의 기행문들이 점점 더 극지방으로 향하는 이유가 저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눈앞에 보이는 풍경, 사물, 사람들... 그것은 너무도 다르고, 다양하지만, 그것을 표현해내는 사람의 글은 그의 특별한 눈, 통찰이 없다면 거의가 다 비슷비슷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불국사에서 하는 경험이, 경복궁에서 하는 경험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다.


"나의, 오래된 길, 이야기"에는 한양도성에 관한 글만 10편이다. 내가 아무리 미세한 감각을 동원해서 열 개의 구역으로 나눈 한양도성을 서로 다르게 표현하고 꾸미고 그 차이점을 이야기하려 해도, "패턴"의 문제가 늘상 따르기 마련이다. 


여하튼 그건 기행에세이를 쓰는 우리 각자가 해결할 문제다. 나는 답사기도 아니고, 기행문도 아니고, 두루뭉술하게 기행에세이라는 표현을 썼지만(참고로 "답사기"와 "기행문"의 차이는 유홍준, "중국편 3" 서문에 기록되어 있으니 참고하시길 바란다), 기행에세이를 쓰는 사람이라면, 결국 최종 바람은 그의 글을 읽는 이들로 하여금 그가 보고, 느끼고, 경험했던 장소로 "가보고 싶은 기분이 들게 하는 것" 아니겠는가. "가본 것 같다는 기분" 말고. 



인터뷰 전문을 다시 읽고 퇴고의 방향을 잡다

요 며칠간 퇴고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3월 초 퇴고를 한다고 해놓고 

왜 그렇게 도돌이표를 찍었는지, 지운 거 다시 살리고, 아예 글을 더 써 넣기도 하고, 

오만 뻘 짓을 했는지, 이유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결론은,

여느 중구난방하는 일들이 다 그렇듯

퇴고의 방향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이 문제고, 어떻게 고쳐야 한다는 생각 없이 써 놓은 글을 마치 오타 수정하듯 슬슬 읽으며 문장이 매끄접지 않는 부분들만 고쳐 나갔던 것 같다. 그러다가 아, 여기 예전에 썼던 거 다시 들어가면 좋을 것 같은데... 라던가, 이 문장은 너무 맘에 드는데 빼기 아까운데...라던가, 인용부분이 더 들어가면 그럴싸할 것 같은데... 라던가, 그런 막연한 것들이 메시지를 다 가려놓고, 퇴고를 하며 분량을 좀처럼 줄이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정해놓은 몇 가지 방향성은 나에게 말고는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퇴고를 하면서 방향을 정하고, 메시지를 드러내고, 분량은 줄이고, 큰 목차, 작은 목차를 손 보고, 인용한 부분에 문제될 게 없는지 살피고, 서문과 마무리글이 매끄럽게 어우러지는지, 문체는 어떤지 두루두루 살펴야 한다. 


그림은... 못 고친다. 애초에 다르게 그릴 수 있었다면 다르게 그렸을 것이다. 다만 그림의 수를 줄여도 되지 않을까. 그림을 줄이면 볼품이 없을까. 고생하며 그린 거라 아까워서 죄다 집어넣었더니 책이 되면 잉크값이 너무 많이 들 것이다. 


어쨌든,

퇴고를 마치는 그날까지 퇴고는 계속되어야 한다.

나 스스로도 더 이상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적어도 내 마음에 드는 원고를 출판사에 들이밀고, 연락을 받는 그날까지...

비록 외면받고 마통으로 자비출판을 하게 되더라도, 

한권의 흡족한 나의 책이 되는 그날까지.  

격정은 금물인데, 왜이래.



// 마 침 //



*제목 및 인터뷰 내용 출처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국보급 역마살 유홍준 "내 구라엔 인생도 흐트러짐도 있어" (chosun.com)




환구단터와 황궁우  /  이호정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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