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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호정 Oct 05. 2021

투고라는 산을 오르기 전

나는 소싯적에 산을 다니던 사람이었다.

인생 전반부를 돌아 보면 대체로 평이해서 이거다 싶게 떠오르는 게 없지만,  

산 다니던 시절, 그 시절 기억만큼은 타임머신이 있다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버튼을 눌러

되돌아가고 싶을 만큼 내게는 강렬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 얘기를 썰로 풀자면 또 한 보따리라, 나중에 그림에세이로 만들려고 차곡차곡 모아두고

설레는 마음으로 제목까지 지어놨다. "산 다니는 여자들" (ㅋㅋ)


각설하고, 안내산악회 몇 번 따라간 경력 밖에 없던 초짜 시절,

나는 나보다 더 초짜인 지인 둘을 데리고 퇴약볕 한 여름에 초행으로 덕유산 종주를 한 적 있다.

무려 남덕유에서 향적봉까지 30km쯤 되는 1박 2일 산행이었는데,

첫날 남부터미널에서부터 꼬인 일정(버스 놓침, 경부선 정체 등) 때문에

1박을 예약해둔 삿갓재대피소에 도착한 시간이 밤 11가 넘은 시간이었다.

그때까지도 안 주무시고 우릴 기다리고 있던 산장지기께서 농담으로 

하도 안 와서 실종신고 할려고 했다며, 그지 꼴로 온 우리를 맞아 주셨다.


그날, 영각사에서 삿갓재까지 남덕유를 오르면서,

산에서 처음으로 토를 하고, 욕을 하고, 이런 무더위에 산을 오른 걸 후회하며,

나는 '산 너머 산'이라는 말의 의미를 세포단위로 깨닫게 되었다.

(그건 비유도, 상징도, 뭣도 아닌, 산을 넘었더니 또 산이 있더라는 뜻이었음.)


아마도 산 다니던 시절의 그런 기억들 때문인지,

무릎통증(전문용어로 '나이롱병'이라 한다)으로 세 시간 이상 산을 오르내리지 못하는 지금도,

일상의 어느 순간, 어떤 버거운 일에 부닥치면 '산 너머 산'의 기억을 떠올린다.

안다. 그것이 산을 넘고, 넘고, 또 넘으면 결국 목표한 곳에 이를 거라는 꼰대적 발상이라는 것을.

그러나 꼰대는 내가 되고 싶어서 되는 게 아니라,

내가 지나왔던, 온통 짠했던 삶의 기억들이 그렇게 만드는 거 아니던가. 여하튼,


투고라는 산을 오르기 전,

해야할 일은,


수통에 물은 채워져 있는지, 랜턴은 챙겼는지, 스틱은 말썽없이 잘 잠궈지는지 살피는 게 아니라,

등산로 입구에 서서 지금부터 오를 저 산을 잠시 바라보는 것이다.

당연히 아무 것도 보이겠지. 어두컴컴하겠지. 계단은 겁나 가파르겠지.

그러나 날이 밝아야 산이 보이고, 산을 보려면 가야 하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같다.


오랫동안 작업해 온 이 원고와 그림이 어떤 곳에서 눈에 띌까,,,

생각만 해도 남덕유 삿갓재다.



나는 '완벽하게 잘 쓴 원고'를 계약하지 않는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원고' '내가 할 일이 분명한 원고' '나와 내가 속한 팀과 출판사에 잘 맞는 원고'를 계약하고 편집한다. 그리고 '내가 재밌게 편집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이건 내 원고라는 확신'은 기필코 독자도 나처럼 이 책을 좋아하게 만들고야 말겠다는 즐거운 작전을 짜는 일로 확장된다.

 '잘 쓴 원고지만 전망이 어둡다'는 것은, 나와 출판사가 할 수 있는 일이 매우 적거나 아예 없다는 뜻이다. 편집자가 파고들어 가서 독자에게 향하는 길을 넓힐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문장은 찬란하고 출판의 의도도 분명하지만, 최소한의 독자에게 가닿을 전망이 캄캄하고 빡빡한데, 게다가 그 어둠을 밝힐 왕도도 딱히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내가 이 책을 책임지는 책임 편집자가 될 수 있을까.

                                                                                                 - 이연실지음, "에세이 만드는 법", 113쪽, 유유



고성 신선대(2021.9)  / 저 너머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풍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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