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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호정 Dec 18. 2021

봄 나무 아래 낡은 표지석

#11 부암동 봄 마실

부암동 현진건집터 / 그림 이호정



 굵은 모래가 깔린 뒷마당까지 둘러보고 나서 무계원을 나왔습니다. 거기서 야트막한 오르막을 따라 몇 걸음 올라가면 ‘현진건 집터’를 알리는 표석과 함께 안평대군의 ‘무계정사터’도 지척이지요. 현진건 집터는 골목의 한 귀퉁이일 뿐이지만,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그 앞에 서면 왠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담장 사이를 비집고 자란 나무들, 아른거리는 그림자, 옹벽의 마름모꼴이라던가, 나란히 선 전봇대가 그의 표석과 함께 추억의 오브제가 되어 주었지요. 그래서 가던 길을 멈추고 그의 단편소설에 빠져 있던 학창시절로 떠듬떠듬 되돌아갔던 모양입니다.


 저는 고교 1학년 때 국어선생님께서 일주일에 한 번 수업하셨던 문학 시간을 정말로 좋아했습니다. 국어와 문학, 역사와 미술을 좋아했던 여고생이 친구 따라 이과로 진학하면서 인생 전반이 꼬여버리고 말았지만, 그때 읽었던 청록파시인의 시들, 한국 단편 소설들은 물리점수 28점이라는 성적표 속에서 방황하던 한 사람의 정신세계를 어루만져주었고, 헌책방에서 300원, 500원씩 주고 사 모았던 낡은 문고판 책들은 읽고 또 읽어도 지루하지가 않았습니다.


 빙허 현진건(1900-1943)이 동아일보 재직 당시 ‘일장기 말소사건’*(1936)으로 가혹한 옥고를 치르고 나서 이사 온 곳이 바로 이곳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자문 밖은 도성 밖 변두리였고 외떨어진 곳이었습니다. 그는 양계로 근근이 살아가며 이곳에서 역사소설 「무영탑」을 집필하게 되지요. 소설은 큰 인기를 얻었지만, 생활의 곤궁함을 벗어나기엔 무리였나 봅니다. 일제강점기 말의 암울했던 시대 상황, 계속되는 사업실패, 이어진 건강악화로 결국 부암동 생활을 정리하게 되고, 해방을 두 해 앞둔 1943년 그는 제기동에서 지병이었던 장 결핵으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에게 이곳은 풍경과 피안彼岸을 위한 장소는 아니었습니다. 

표석만 덩그러니 남았을 뿐, 아무 흔적도 없고, 

그가 소설인지, 진짜 세상인지 모를 만큼 생생히 그려냈던 현실도, 

‘운수 좋은 날’을 읽으며 심란해하던 저의 시절도 

까마득하게 지나가 버린 것 같았습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청아한 산새 소리가 인적 없는 길의 고요를 깨뜨리고, 

봄의 나무들 아래 낡은 표지석만이 그의 비석인 양 

쓸쓸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일장기 말소사건(1936)

동아일보와 조선중앙일보가 베를린올림픽 마라톤경기에서 우승한 손기정선수의 사진을 게재하면서 일장기를 지운 이유로 발생한 일제의 언론탄압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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