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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으로 찍은 승봉도의 하루

<창의문 사진모임> 출사기록(1)_2025.9.20

by 이호준

초가을의 승봉도는 발길이 닿는 대로 길을 내주는 섬이었다. 살짝 차가워진 바람이 옷자락을 스치고 낮은 파도가 발끝을 조심스럽게 적셨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육지에서 묻어온 탁한 공기가 서서히 벗겨졌다. 멀리 눈앞에 영흥도 화력발전소가 흐릿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매연 대신 은빛 햇살이 스며든 굴뚝은 산업시설의 그림자가 아니라 균형미를 지닌 건축 작품처럼 보였다. 차가운 구조물이 세월의 힘으로 섬 풍경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모래사장을 걷다 발끝이 멈춘 자리에는 작은 죽음이 놓여 있었다. 한때 바다를 누비던 게의 흔적이었다. 생과 사가 교차하는 그 지점에서 나는 걷는 행위가 단순한 이동이 아님을 깨달았다. 걷는 동안 몸은 비워지고 마음은 채워진다. ‘걸어야 보인다’는 문장이 마음 위로 떠올라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카메라 셔터는 그 순간의 침묵을 천천히 담아냈다. 섬을 한 바퀴 돌고 다시 뭍으로 향하는 차도선에 올랐다. 지정 좌석이 없는 철선은 갑판에서 갈매기와 눈을 맞추고 광활한 바다 풍경을 만나는 유람을 선사했다. 자월군도가 멀어지고 뭍이 가까워지자 인천대교가 바다 위로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복잡하면서도 화려한 도시 풍경이 수평선 위에 윤곽을 그리며 다가왔다. 섬에서의 고요가 세상의 분주함 속으로 빨려들 듯 사라져 갔다. 나는 그런 도시를 바라보며 마지막 셔터를 눌렀다. 걷고 바라보고 찍은 모든 순간이 추억으로 남았다. 그럼에도 출발 때보다 한층 가벼운 마음으로 섬과 육지의 경계를 넘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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