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하다 Oct 07. 2021

어느 날 갑자기

15분 스토리텔링


오늘은 아침부터 구름 낀 하늘과 저 아래 깔린 안개들로 내 시야를 대부분 차단해 버렸다.

갑갑하고 묵직한 공기로 숨을 쉬기 힘들 것 같은 풍경은 회색 건물 속 나 혼자만 덩그러니 살고 있는 섬으로 착각을 일으킨다.



이부자리에서 일어남과 동시에 열어젖혔던 내 키의 1.5배 창문을 닫으려 하는데, 짙게 몰려든 구름들 사이로 마지막까지 발악하던 길고 굵은 빛줄기 하나가 지상으로 내리 꽂혔다. 잠시의 찡그림을 주던 황금색 섬광 끝에는 나무를 심는 아이가 쓰러져 있었다.



오래도록 기다린 소년이었다. 1년 전 황량한 낯선 도시에서 길을 잃었을 때 오감을 잃은 인간들 무리 사이에서, 유일하게 보고 듣고 말하고 느끼던 14살의 소년이었다.



"이리 와! 손을 내게 줘! 어서 빨리!"



나는 그 목소리에 홀렸고 뻗어진 소년의 손안에 빨간색 나무가 그려진 그림 위로, 황금빛이 발하는 것에 이끌려 어깨와 팔꿈치의 관절이 절로 움직여 뻗어 나갔다. 맞잡은 손바닥 사이로 붉은색을 띠던 나무가 내 키는 거뜬히 넘는 홀로그램을 만들어 내더니, 점차 초록으로 물들어 가고 이내 황금빛으로 터져나갔다. 그리고 나와 그 소년의 흔적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지금 내가 내려다보는 창문 건너 아래에는 오래전 사라졌다 나타난 이동 공간의 도착지로, 계속 찾아 헤매던 그 소년이 쓰러져 있는 것이다.



"맙소사, 맙소사, 맙소사 드디어 찾았어!"



엘리베이터가 멈춘 지 10년은 족히 넘은 아파트 건물 계단으로, 17층쯤은 아랑곳하지 않고 정신없이 뛰어 내려갔다.



"젠장, 하필이면 17층이라니. 제발, 도착할 때까지 그대로 있어줘!"



아래로 내려갈수록 다리의 후들거림이 심해지고 심장은 규칙적인 박자를 잃은 지 오래, 머리는 끊임없이 '서둘러'라고 외쳐되는 통에, 온 몬이 땀에 젖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소년 앞에 다 달았다.



몸을 구부려 그 아이의 목에 손가락을 갖다 대는 것은 본능과도 같았다.



'제발...'



가냘픈 맥박이 내 손끝에서 뛰는 것을 확인하고선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았다.



'살아 있어. 살아 있다고...'



다시 만나게 된 안심과 기쁨 뒤로, 주머니에서 무엇인가 희미하게 빛을 내며 깜빡거리고 있었다.



'뭐지?'



마치 구조 요청 신호처럼 느껴진 터라, 나는 소년의 주머니를 뒤져 꺼내어 들었다. 내 손 위로는 빨간 나무 그림의 둥근 펜던트가 올라가 있게 되었고 반각되어 있는 모양 틈새를 따라 손가락을 쓸었더니, '루하'라는 글자가 생겨났다 사라졌다.



"루... 하....?"



분명 읽을 수 없는 낯선 문자였는데, 내 뇌는 일 말의 어려움도 없이 입 밖으로 '루하'라는 단어를 뱉어냈다.



" 명령 입력 완료(지지직). 곧 모든 기억이 옮겨 갑니다. 카운트다운 시작. 10, 9, 8, 7, 6, 5, 4, 3, 2, 1, 0. "

매거진의 이전글 저 곳 어딘가에 내가 있을 곳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