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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 Mar 02. 2018

생일에만 빛을 내는 등대

생일에만 빛을 내는 등대

외국에 살면서 주재원 생활을 하는경우, 회사에서 한국인들 이름을 이니셜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남편의 이니셜은 JD인데 친한 친구들은 그를 Jack Danial이라 부르기도 한다. 술을 좋아하기도 하는 그에게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아일랜드에 살면서 이런건 참 좋아!라고 생각되는 것들이 여러가지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다양한 연령층의 친구를 만날 수 있다는 것과 누구라도 자신의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이다. 나보다 열살이상 많은 사람과도 편하게 어울리고 스무살 젊은 청년과도 친구가 된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이름을 부른다. JD 또는 Jack Danial이라고.


그러나 여전히 한국인끼리는 한국사회가 그러하듯 서로 알아가는 과정에서 연령확인이 불가피한 것 같다. 그래야 적당한 호칭을 찾기 때문이다. 나이를 직접 대고 물어보기 미안하니까 무슨띠인지 묻기도 하고 학번을 묻기도 한다. 나만해도 나보다 한참 어린 사람이 ‘선영씨’라고 부르면 왠지 무시당한 느낌도 들고 쉽게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을 닫게 된다.




받면 유난히 정많고 이벤트 좋아하는 나라에서 사는 것이 불편할 때도 있다. 바로 생일이다.


JD에게는 세번의 생일이 있다. 음력생일, 양녁생일 그리고 호적생일이다. 결혼하기 전까지는 어머님께서 남편의 음녁생일을 챙겨주셨다. 그런데 나에겐 음력날짜를 세는 것이 여간 힘든일이 아니다. 그래서 종종 남편 생일을 놓치곤 했었는데, 외국나와 살게되니 그마저도 기억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그래서 모든 행사와 생일은 양녁으로 지내고 있다. 심지어 새해 명절도 우리는 1월1일 양녁설을 지낸다. 내가 맏며느리라서 제사와 차례도 지내야하는데 음력으로 하려니 기억하기도 어려울뿐 아니라 남편직장이며 아이들 학교며 걸리는 것이 많아서 추석이야 어쩔수 없지만 설날이라도 다같이 쉬는 날에 하자는 뜻에서 1월1일로 지낸다. 그러니 자연스레 남편생일도 양녁생일인 1월 초순에 지내고 있다.


20년이 훌쩍넘어 삼신년이 되어가는데도 남편은 1월에 지내는 자신의 생일 낮선모양이다. 난데없이 내미는 선물이며, 케익이며, 미역국이 등장할때마다 '오늘이었던가?' 한다. 그보다 더 느닷없는건 SNS에서 알려오는 생일이다. 요즘 한창 페이스북에 빠져 있는 남편은 2월말경에 축하문자를 수십개씩 받곤한다. 페이스북 계정 등록할 때 입력하는 호적생일이 페북친구들에게 공개되기 때문이다. 한때는 일일이 죄송합니다. 오늘이 아니고 이미 지났는데 호적이 그리되어 있습니다. 하며 축하인사를 반송이라도 하듯 댓글을 남기곤 했다. 회사 동료들 역시 페북에서 알려주는 생일날 카드와 축하를 보내온다.


내 주변엔 그런 인사가 세명이나 있다. 별로 발이 넓은 것도 아닌데 매우 친한 사람 세명이 모두 그렇게 세번의 생일을 가지고 있다. 그중 같이 아일랜드에서 살고 있는 한 친구는 아예 호적생일날은 무조건 회사를 결근한다. 친구회사에선 동료들이 생일날이면 미리 아침부터 당사자 몰래 십시일반 돈을 모아 정성스레 선물과 케익을 준비하고 점심시간즘엔 깜짝파티를 해 준단다. 대체 그 많은 동료들의 생일을 일일이 어떻게 기억하는건지… 처음 한두번은 좋았는데 해를 거듭하면서 일년중 그 호적에 기록된 가짜 생일날이 친구에겐 가장 불편한 날이 되어버렸다. 동료들이 아침부터 부산스레 오가고 수근거리는 이유를 알면서도 모른체 하고 있기가 불편하고, 몇몇 동료들은 생활이 넉넉치 않은데도 유난히 많이 몰려 있는 9월달 생일 친구들을 위해 주머니를 비워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날이 불편한 것이다. 그래서 의례 생일날을 병가 신청을 하거나 미리 휴가를 이삼일을 내 둔다고 한다.



유난히 감사인사, 축하인사를 잘하는 아이리쉬 사이에서 살려니 이런 인사를 주고 받는 것도 이젠 그러려니 할법한데 역시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모양이다.


엊그제 아침, 자고 일어나니 별로 활동도 하지 않는 내 페이스북 계정에 생일 축하 인사가 여러 개 올라와 있었다. 흠, 축하메세지 밑에 하나씩 고맙다는 답글을 달아야 할까? 그냥 ‘좋아요’만 클릭할까? 아니면 씨크하게 모른척 놔둘까? 축하를 받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고마운 생각이 먼저 들어야 할텐데 언젠가 부터는 오히려 미안함이 먼저든다. 매일 페이스북이나 다른 SNS를 켜두고 사는 것도 아닌다음에야 그 많은 사람들의 생일을 일일이 챙길수도 없거니와 별로 친하지도 않은, 심지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생일을 챙기면서 진심에도 없는 축하인사를 나눠야 하느걸까?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미처 생일 문자를 남기기도 전에 지인의 생일이 지나버리고 말기 때문에 오히려 축하받고 축하해줘야 하는 날에 서운한 마음이 들 수도 있다.



몇 년전까지만해도 남편이 내 생일을 안챙겨주면 서운했는데 이젠 그런 것이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조용하게 어제도 오늘같고 내일도 오늘 처럼 그냥 하루씩 잘 살고 싶을뿐, 어느 한날 배불리 먹거나 욕심내어 한껏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사그러들었다. 요란스럽게 선물을 주고 받거나 근사한 음식점에 가는 것도 신나지 않는다.


그날 아침, 프랑스 출신의 친구 ‘샬롯’이 전화를 했다. 

“써니야, 생일 축하해! 오늘은 그 어떤날보다더 빛나는 날이길 바래!” 

그렇게 흥분한 목소리로 신나게 말하는 샬롯에게 찬물이라도 끼엊듯, 생일날도 성탄절이나 부활절에도 생전 모른척 하고 지내던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것이 나는 적응이 잘 안된다고 했더니 샬롯은 그냥 ‘등대’려니 하란다.

“등대?”

“일년에 한번 너의 등대가 깜빡이며 밝게 빛을 내면 사람들은 ‘그래, 나 여기있어! 여전히 너를 기억하고 있지. 너와 가까이 있지 않지만 항상 관심이 있고 응원한단다.’라고 말하는거지.”



평소 소원하게 지내거나 혹여 나는 저 친구를 여전히 기억하는데 그 친구는 나를 이제 잊어버린것 아닐까? 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그래서 가끔은 분명 아는 사람인데도 길에서 만나면 먼저 아는척을 못하고 주저할때가 있지 않은가. 세상 사람들중에 생일이 없는 사람은 없다. 모두 일년중 하루는 생일이 있고, 남편이나 친구처럼 두세번의 생일을 갖고 사는 사람들도 있다. 샬롯의 말을 듣고 보니 생일날 하루 빛을 내는 등대 같은 존재가 요즘처럼 바쁘고 차갑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 새삼 느끼게된다. 부담스러운 선물이 오가는 것도 아니고 ‘생일 축하 한다’고 간단한 문자 한줄, ‘난 너가 그리워’라는 마음의 글 한줄을 남겨줄 수 있는 편리한 세상에서 사는 것을 마냥 불편하게 생각했던 마음이 샬롯의 몇마디 말에 금새 뒤집혀 버렸고, 샬롯의 전화 한통은 생일아침 큰 선물이 되었다. 내 생일이 다른이게 등대가 되다니. 사람은 존재만으로도 타인에게 선물이 된다는 진리를 깨달은 생일날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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