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식열전 (11) 초이왕

포크로 퍼먹는 몽골식 볶음국수

by 이그나티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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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왕은 몽골의 볶음국수이다. 주로 양고기와 야채를 넣어서 만드는데, 몽골 가정요리에서 아주 대표적이어서 “초이왕을 잘 만드는 여자는 시집갈 준비가 되었다.”는 말이 있다고도 한다. (여성은 당연히 밥을 해야 한다는 여성차별적 인식을 확산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전해들은 말을 전하는 것뿐이니 너무 분노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초이왕을 처음 먹은 것은 3번째 변호사시험을 망친 직후였다. 돌이켜보면 5번의 변호사시험 중 3번째 변호사시험을 가장 열심히 공부했던 것 같다. 학원에 다니면서 타성적으로 공부하는 것보다는 독학으로 집중적으로 약점을 보강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했는데 결과는 별로 좋지 않았다.


아무튼 시험을 망친 직후 나는 동대문 근처에 위치한 이른바 “몽골타운”에 위치한 한 몽골음식점을 방문해서 생전 처음으로 몽골요리를 먹게 되었다. 이전에 그곳은 유튜브의 맛집 영상에서 본 적이 있었고 딱 내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언젠간 꼭 1번 방문해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었다.


생각해보면 한국의 이민 인구가 가진 특성으로 몽골이나 중앙아시아 지역, 즉 구공산권 출신의 이민자가 굉장히 많다는 것이다. 특히 그 중에서도 몽골 이민자들은 요즘은 굉장히 쉽게 우리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이민자 집단이다. 서울 동북지역에서는 생각보다 몽골사람과 자주 마주치게 된다. 듣기로는 큰 체구 덕분에 이삿짐센터와 같은 체력이 필요한 직종에 많이 종사한다고 들었다. 보통 서양 지역에서는 구 식민자 출신의 아랍이나 아프리카 지역이나, 라틴아메리카 출신의 이민자들이 많은 것과는 다소 다른 모습이다.


실제로 이러한 몽골인들의 진출은 우리의 지도를 변화시키고 있다. 내가 지리학자가 아니라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몽골인들의 흔적은 서울 동북지역(동대문 근처에 위치한 몽골타운, 장위 월계 등 성북, 중랑구 등)에 집중된 느낌이다. 보통 해당 국가의 식당이나 카페가 이민자들의 모임공간이라고 가정한다면, 서울 시내 몽골식당은 주로 위와 같은 지역에 분포한다. 한국의 몽골 음식점은 이국적 풍미를 찾는 데이트 손님이 아닌, 진짜 몽골인 이주노동자들을 타겟으로 한 것이어서 몽골인들의 행동반경과 겹친다는 것이 내 추측이다. 실제로 그런 식당들에 가보면 한국인 손님보다는 몽골인들이 더 많다. 가격대 역시 이태원 스타일의 ‘에스닉 푸드’보다는 저렴한 편이고, 음식의 간이나 풍미 역시 현지화가 덜 되어있다.


사실 서울의 동북지역은 서울 내에서도 상대적으로 글로벌화가 덜 된 지역이다. 서남부의 중국인 이민자들을, 마포-서대문 일대의 외국은 유학생과 관광객을, 강남 일대의 한국계 외국인들과 외국인 비즈니스맨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반면 동북지역은 베드타운의 성격이 강해 한국인이 강우세인 지역이다. 굳이 따지자면 드문드문 있는 대학가나 연구소의 유학생 정도?


하지만 유달리 몽골과 중앙아시아 외국인들의 행동반경은 동북지역에 몰려있는 느낌이다. 아마도 이것은 몽골이나 중앙아시아 출신은 기존의 다른 이민자 집단들과는 구별되는 집단이어서 그럴 것 같다. 영어나 중국어를 쓰지도 않고, 주로 노동을 위해 건너온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것 아닐까? (물론 여기까지의 분석은 어디까지나 추측의 영역이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의 추측은 그정도 하고, 아무튼 당시 나는 초이왕과 양갈비를 시켰는데, 당연히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고기메뉴와 식사메뉴를 먹게 되어 있으므로 국수 양이 그렇게 많을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초이왕의 양은 많았고 초이왕을 다 먹을 때쯤에는 양갈비를 다 먹기 어려울 지경으로 배가 불렀다. 물론 처음 먹어본 양갈비의 뼈를 발라낼 줄 몰라서 양갈비 자체도 많이 남기긴 했지만 말이다. (물론 이후 ‘내돈내산’으로 여러차례 훈련을 거쳐 지금은 커다란 뼈에 붙은 양고기를 뼈만 빼고 쏙쏙 발라먹을 정도로 양의 해부학적 구조를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음식을 남기면서 식당 주인분께 진심으로 사과를 드렸다. 너무 맛있는 음식이었고, 넉넉한 양에 정말 감동했다. 그날로 초이왕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요리 탑3 안에 들게 되었다. 솔직히 마음 같아선 1위로 하고 싶은데, 함부로 순위를 매겼다가 나중에 말을 바꾸게 될 것 같아서 참기로 했다.


내가 초이왕에 무엇보다도 감동한 것은 넉넉한 양이다. 음식의 만족도를 결정하는 양대 요소가 양과 맛이다. 하지만 점점 양의 중요성은 줄어드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유는 알기 어렵지만 묘하게 우리나라에서는 1인분이 1인분이 아닌 느낌이 있다. 항상 어떤 식당에 가서 밥을 시키면 0.7인분 정도밖에 안 되는 기분이 든다. 꼭 나와서 테이크아웃 커피를 1잔 마셔 줘야 그제서야 식사를 끝낸 느낌이 든다. 이런 분위기 탓인지 덩달아 사람들의 손도 작아져서 가정요리 역시 고기 150-200 그램이 정량인 것처럼 되어버렸다.


이러한 분위기는 코로나 19를 거치면서 심화된 인플레이션, 그리고 그 인플레이션에 동반된 슈링크플레이션(가격을 올리는 대신 ‘질소포장’ 처럼 가격은 그대로 두면서 양을 줄이는 소비자에 대한 가격전가 현상)에 따라 음식의 양은 점점 줄어들었다. 추억의 아이스크림이 내가 크면서 작아보이는 것과 동시에 아이스크림도 같이 작아졌다는 씁쓸한 우스갯소리가 이런 현실을 대변한다.


애초에 음식문화 자체가 점차 양보다는 질을 추구하는 느낌이다. 파인다이닝 셰프들이 대거 출연하여 인기를 끄는 요리 예능의 열풍이 이런 경향을 반영하는 것은 아닐지. 뭔가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양을 따지는 것은 뭔가 미개한 행위인 것 같은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고 해도 1숟가락만 먹을 수 있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겠는가? 생각해보면 음식의 양과 질이 모순된다는 것 역시 편견일지 모른다. 파인다이닝이나 오마카세라 할지라도 개별 피스의 양은 적지만, 세트로 구성되다보니 끝까지 먹으면 제법 양이 푸짐한 요리라고 해야 한다. 아마 파인다이닝의 코스를 1상에 차리면 남도 한정식 못지 않은 양이 될 것이다.


물론 한국의 음식문화가 완전히 양을 포기한 것은 아니어서 몇 년전부터 유행인 뷔페 음식점과 같은 양 추구의 음식문화 역시 아직 명맥이 살아있긴 하다. 하지만 맛을 완전히 포기한채 양만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것 역시 슬픈 일이다. 나는 뷔페 코너에서 사람들이 잘 손대지 않는, 그저 양을 채우기 위해서만 준비된 음식을 볼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런 메뉴를 집어먹지는 않지만


초이왕은 넉넉한 양과 푸근한 맛으로 먹는 사람의 영혼을 치유해주는 음식이다. 가게에 따라 차이는 있겠으나 기본적으로 초이왕은 양이 엄청나게 먹어서, 떠먹는다기보다는 퍼먹는다는 느낌에 가까운 음식이다. 그렇다고 해서 맛이 없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양고기의 풍성한 기름과 풍미, 그리고 볶아진 야채와의 조화가 쫀득쫀득한 밀가루 면과 합쳐지면서 기름지고 풍성한 독특한 풍미를 형성한다. 양고기를 싫어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축 늘어진 한국식 국수요리에 불만이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먹어볼 가치가 있다.


아무튼 그 이후로도 나는 주기적으로 몽골타운에 있는 몽골 음식점에 가서 초이왕을 꼭 먹었다. 마지막 2번의 변호사 시험을 치르는 동안.


그러다가 5번째 변호사 시험에 떨어져 변호사가 될 길이 완전히 봉쇄된 뒤, 나는 심기일전하여 재취업을 준비하기 위해 잠시 자취를 하게 되었다. 자취를 하면서 이런저런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걸 지금의 시리즈로 올리게 되었는데 그러다가 어느날 문득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초이왕을 만들어 먹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챗 지피티와 유튜브를 이용해 만드는 방법을 찾아보니 생각보다 어렵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있는 것은 의외로 한국어 영상이 있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만들었던 바깔라우 요리나 남인도식 커리와 같은 메뉴들은 한국어 자료를 찾기 어려웠는데, 그만큼 한국과 몽골의 교류가 많다는 뜻이리라.


물론 양고기가 문제였는데, 인터넷에 보니 300그램에 15,000원 정도에 파는 것이 있어서 이걸 반씩 쓰면 1회분에 7,500원 가량으로 고기 재료비를 맞출 수 있겠다는 계산이 섰다.


재료가 배달된 바로 다음날 나는 초이왕을 만드는데 착수했다. 만드는 방식은 크게 어렵지 않다. 우선 나는 냉동한 양고기를 해동시켰는데, 시작하자마자 1가지 실수를 깨달았다. 뼈 포함 300그램이어서 실제 고기는 그 절반 정도밖에 되어 보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는 10,000원 이하로 만들겠다는 예산을 시작부터 실패한 셈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엎질러진 물이다.


우선 양고기와 양파, 당근, 그리고 마늘을 볶아 야채고기볶음을 만든 뒤 소금간을 한다. 유튜브에서는 짜게 하라고 해서 소금을 1.5작은술을 넣었더니 나중에 먹을때는 좀 짠 느낌이 들었다. 아무튼 볶음이 다 되면 볶음이 반쯤 잠기도록 물을 넣고, 거기다가 칼국수를 올려 10분간 찌면 된다. 중간중간에 기름을 좀 풍부하게 넣어야 기름진 초이왕의 맛이 난다.


원래는 칼국수가 아니라 직접 반죽을 만들어 잘라서 쓰는데, 내가 만드는 영상을 보니 그 초이왕 용 국수를 만드는 과정이 칼국수를 만드는 과정과 비슷해 보여서 칼국수로 대체하기로 했다. 실제로 칼국수로 대신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칼국수는 수제 초이왕 국수의 훌륭한 대체품이었다.


아무튼 마지막으로 재료와 면을 한 냄비에서 10분간 찐 뒤 면을 다시 섞어주고 접시에 담으면 끝이다. 만드는 과정은 의외로 간단하다. 몽골음식들이 대개 이런 것 같다. 예전에 다큐멘터리에서 몽골 전통요리를 만드는 과정을 보았는데 그 환경을 보니 이런 간단간단한 음식 위주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일랜드 키친을 갖춘 주방이 게르에는 있을 턱이 없고, 화로 주위에서 칼로 숭덩숭덩 썰어서 음식을 만들고, 솥에 볶거나 튀기는 것이 많아서 복잡다단한 조리법이 발달하기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만드는 법이 간단하고 맛이 꼭 간단한 것도, 만드는 법이 복잡하다고 맛이 꼭 복잡한 것은 아닌게 요리의 매력이다. 초이왕이 그렇다.


또 이것을 포크로 집어 먹는데, 동양에서는 드물게 몽골에서는 포크를 쓴다.


몽골은 20세기 내내 소련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청나라에서 분리된 이후 적백내전 시대 ‘미친 남작’ 운게른 폰 슈테르펜베르크의 지배를 잠시 받다가 수흐바타르와 초이발상의 몽골 공산당이 공산혁명을 일으켜 공산정권을 세운다. 당연히 이 몽골 공산당은 소련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었다. 인접 강국의 문화를 빠르게 흡수하는 유목민 국가답게 몽골은 이 기간 동안 러시아의 문화를 빠르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지금도 몽골 식당을 보면 묘하게 러시아의 분위기가 풍긴다. 메뉴 역시도 보르시치나 마르코프차와 같은 러시아 음식이 많다. 심지어는 헝가리 요리인 굴라쉬를 몽골식으로 변형시켜 팔기도 한다. 중앙아시아 및 유목지대가 전반적으로 러시아 문화권이긴 하지만, 유독 몽골은 러시아의 느낌이 강하다. 재미있는 것은 중국의 영향보다 러시아의 영향이 더 커보인다는 점이다. 물론 중국의 영향 탓인지 볶음밥이나 만두 같은 요리도 분명히 있다. 또 몽골인들이 차를 선호하는 것 역시 중국 문화의 영향이다. 아마도 몽골의 문화적인 개방성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물론 나는 이런 유목민의 개방성을 존경한다.


삶지 않고 쪄서 쫀득쫀득한 기름진 고기국수를 포크로 푹푹 찍어서 먹는 것은 한국에서는 좀처럼 느끼기 힘든 감각이다. 그리고 나는 이것을 성공적으로 내 자취방에서 해냈다는 데서 큰 기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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