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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한빈 Nov 12. 2017

‘다산 정약용의 편지에서’

다산 정약용의 편지에서

                                                                         김한빈



 “무릇 사대부 집안의 법도는 벼슬길에 높이 올라 권세를 날릴 때에는 빨리 산비탈에 셋집을 내어 살면서 처사(處士)로서의 본색을 잃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만약 벼슬길이 끊어지면 빨리 서울 가까이 살면서 문화(文華)의 안목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지금 내가 죄인이 되어 너희들에게 아직은 시골에 숨어서 살게 하였다만, 앞으로의 계획인즉 오직 서울의 십리 안에서만 살게 하겠다. 만약 집안의 힘이 쇠락하여 서울 한복판으로 깊이 들어갈 수 없다면 잠시 서울 근교에 살면서 과일과 채소를 심어 생활을 유지하다가 재산이 조금 불어나면 바로 도시 복판으로 들어가도 늦지는 않다. <중략>


 옛날부터 화를 당한 집안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반드시 먼 곳으로 도망가 살면서도 더 멀고 깊은 곳으로 들어가지 못했음을 걱정하곤 했다. 그리하면 마침내 노루나 산토끼처럼 문명에서 멀어진 무지렁이들이 돼버릴 뿐이다. <중략> 그 이유를 살펴보면 대개 그늘진 벼랑 깊숙한 골짜기에서는 햇볕을 볼 수가 없고 함께 어울려 지내는 사람은 모두 버림받은 쓸모없는 사람이라 원망하는 마음만 가득하기 때문에 그들이 가진 견문이란 실속 없고 비루한 이야기뿐이다. 그러하기 때문에 한번 멀리 떠나면 영영 다시 돌아오지 않게 된다. 


 진정으로 바라노니, 너희들은 항상 심기를 화평하게 하여 벼슬길에 있는 사람들과 다르게 생활하지 말거라. 자손 대에 이르러서는 과거에 응시할 수 있고 나라를 경륜하고 세상을 구제하는 일에 뜻을 두도록 해라. 천리(天理)는 돌고 도는 것이니 한번 넘어진 사람이라서 반드시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하루아침의 분노를 이기지 못하여 서둘러 먼 시골로 이사가 버린다면 무식하고 천한 백성으로 일생을 끝마치고 말 뿐이다.” - 다산 정약용의 편지에서


  다산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자식들에게 쓴 서간을 보면, 그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와 방식이 오늘날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로서 서울 중심의 중앙집중화라는 단면을 잘 드러내고 있다. 다산이 자식들에게 수도 서울이라는 권력과 문화의 중심부에 근접한 삶을 권고하는 것은 지방분권의 시대를 역행하는 우리 사회문제와 직접 연결된다. 물론 다산의 가치관은 당시 사대부가 추구했던 성리학적 이념에 근거하고 있다. 마땅히 ‘치국 평천하(治國 平天下)’의 소임을 다하여 입신양명(立身揚名)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삶의 방식은 당대의 사대부가 보편적으로 추구했던 하나의 집단적 패러다임에 지나지 않는다. 권력 지향적, 문명 지향적인 가치관은 자신이 속한 양반이라는 상층계급의 지배적 이념에 충실한 자기중심적인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지방과 민중 그리고 개혁이념 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이와 같은 삶의 방식은 불교의 선승(禪僧)과 같이 탈속적인 삶과 진리를 추구하는 구도자의 모습과 극단적으로 대비된다. 이는 세속적인 가치를 초월하여 궁극적인 진리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질 수 있다. 그럼에도 수도자의 명상과 깨달음이 현실에 어떠한 유용성이 있는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선불교의 화두인 ‘백척간두 진일보(百尺竿頭 進一步)’는 구도자가 진리를 깨닫고 난 뒤 거기에 머물지 않고 대중을 구제하기 위하여 그들 속으로 돌아간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인간이 사회 공동체에서 유리되어 개인적 진리 탐구의 즐거움에 몰입하기보다 공동체가 추구하는 공동선을 함께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 더욱 현실참여적이라 말할 수 있다. 


  개인은 자신이 속한 특정 계급이 지향하는 이념에 충실할 수 있고, 세속적 가치를 멀리하고 진리를 추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배 계층이나 구도자이든 모두 사회공동체의 일원이므로 공동체가 추구하는 공동선과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를 일치시켜야 할 의무를 가진다. 따라서 자기중심적인 사고는 전체 역사 전개 과정에 대한 몰이해와 적극적인 현실 참여에 대한 인식의 한계를 드러낸다. 자신과 구별되는 대다수 대중들의 삶을 향상시키는 것 또한 지배계층의 도덕적 의무일 수 있다. 더 나아가 사회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 사회적 진리일 수도 있다.



<오륙도신문> 칼럼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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