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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한빈 Feb 02. 2018

한국의 히로시마, 71년의 아픔

한국의 히로시마, 71년의 아픔

                                                             김한빈



 지난 달 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일본 히로시마 방문은 자국 언론에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점 말고도 이를 지켜보던 우리 한국민들의 마음을 착잡하게 했다. 오바마 미 대통령은 취임 직후 체코 프라하에서 ‘핵 없는 세계’를 선언해 노벨평화상을 받았고, 이 선언을 주요 정책 어젠다로 추진해 왔다. 일본 이세지마에서 개최된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 직후 피폭 도시 히로시마를 방문하여 헌화와 연설을 했다. 일본 언론은 ‘양국에 박힌 역사의 가시를 빼는 일’이라고 환영했지만, 미국 내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의 사과 여부에 큰 관심을 모았다. 방문 행사에서 일본의 전범 죄책감이 아니라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가 더 큰 주목을 받게 될 것에 우려를 제기했다. 일본이 침략전쟁의 가해자에서 세계 유일 피폭 피해국가로 변신하는 이벤트를 바라보는 우리의 입장은 식민 피해와 피폭 희생이라는 이중의 고통에서 난감하였다. 


 일본 내무성 경보국 자료에 따르면,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에 피해를 입은 사람 77만 가운데 10만 명은 징병, 징용, 생계 도모 등으로 건너간 조선인이었다. 당시 사망자는 23만여 명에 달했고, 우리 사상자는 7만여 명(히로시마 5만명, 나사사키 2만명), 그 중 사망자는 4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체 사망자 중 약 20%(피해자는 10%임)가 우리나라 사람이다. 피폭 생존자 3만여 명 중 고국으로 돌아온 사람은 2만3천명으로 알려져 있다. 그 중 90%는 가난과 방사능 후유증으로 고생하다 사망했고, 2015년 집계, 한국에 생존해 있는 사람은 2584명(한국원폭피해자협회 등록 기준)이다. 특이한 점은 그 중 25%에 해당하는 650여명이 경남 합천군에 살고 있다. 


 히로시마의 조선인 피폭자 가운데 다수가 합천 출신이다. 광복 이후 이들이 합천으로 돌아오고 2․3세들이 태어나면서 합천군은 ‘한국의 히로시마’로 불리게 되었다. 사실은 일본인 이치바 준코의 연구서 ‘한국의 히로시마’에서 따온 별칭이다. 그는 이 연구서에서 한국인 피폭자의 발생과 조직화 과정, 보상 문제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현재 ‘원폭피해자복지회관’(1996년 설립)을 비롯해 ‘합천 평화의 집’(2010년 설립),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 한국원폭2세 환우회‘(2002년 설립) 등 관련 단체도 이곳에 있다. 합천 원폭 피해자의 자녀는 1,800명으로 추산된다. 국내 거주 원폭 2세 1226명에 대한 2004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이들은 대를 이은 질병과 유전에 대한 공포로 떨고 있다.


 일본 정부가 한국인 피폭자 지원을 외면하자, 1984년 일본 시민단체인 ‘재한 피폭자 도일치료 위원회’는 피폭자 572명에게 치료 지원을 했다. 일본 정부는 1990년 한국 원폭 피해자들에게 40억엔(당시 환율로 248억원)을 지원하여, 우리 정부는 합천에 복지회관을 건립했다. 2008년 일본 정부는 국가를 상대로 소송한 일본 내 원폭 피해자들을 구제하겠다고 약속했다. 재외국인 원폭 피해자들의 소송에도 변화를 가져와 지난해 일본 대법원 판결로 재한 피폭자들도 치료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우리나라는 17대 국회에서 피폭 1세와 2세 지원을 위한 특법법을 발의만 하고 폐기했다.


 오바마가 이번 베트남에 이은 일본 방문은 지난 7년간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을 기획해온 일본 외교의 승리라기보다 중국 팽창을 견제하는 미국 동북아 외교전략의 일환에서 ‘일본 껴안기’이다. 한일 역사 문제에 개입하여 위안부 합의를 유도한 미국 안보 외교 행보의 연장선에서 이를 해석할 필요가 있다.


 일본 평화헌법 해석을 수정하고,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치닫는 아베 정부가 전범국 이미지를 벗고 평화를 외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일제 침략과 전쟁 범죄로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준 과거사에 대한 진정한 사죄에 인색한 일본 우익에게 이번 오바마 방문이 면죄부를 줄 순 없다. 게다가 미 정부는 1조 달러(1000조 원 이상) 예산을 투입해 핵무기를 현대화한다고 밝히면서 히로시마를 방문하는 것 또한 아이러니다.


  이번 히로시마 방문에 대한 답례로 일본 아베 총리는 ‘진주만 답방’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미일 동맹을 자랑하기보다 일본의 진실한 역사 반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올해 광복 71년은 원폭 71년이다. ‘비핵․평화 선언’은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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