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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한빈 Mar 07. 2019

‘겨울에서 봄으로’

겨울에서 봄으로  

                                                김한빈


   

 올해 입춘은 설날 앞날에 왔다. 겨울은 한 해가 마무리되고 한 해가 시작하는 양면성을 띠는 아이러니의 계절이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것은 우주의 리듬에 맞춘 겨울의 풍습이다. 겨울은 동지에서 입춘까지 3개월간이다. 겨울이 깊어질수록 봄이 가까이 온다는 사실은 모순의 섭리다. 


 서양과 달리 동양이 겨울의 이중성을 더 잘 파악한 것 같다. 때의 흐름을 바탕으로 사유한 철학 체계인 중국의 고전 ‘주역’이 그 대표적 사례다. 서양에는 종말론이 있어도 동양엔 없는 까닭이 서양은 시간을 직선적 속성으로, 반면에 동양은 순환적 속성으로 인식한 데에 있을 것이다. 시간의 순환성을 바로 보여주는 계절이 겨울이다. 겨울이 깊어지면 다시는 봄이 올 것 같지 않아도 봄은 기어이 오고 만다. 겨울은 만물을 갈무리하고 저장하는 창고요, 새봄의 생명성을 잉태한 모태다. 


 『주역』의 47번째 괘가 ‘곤괘(困卦)’다. 택수곤(澤水困)이라고 한다. 연못에 물이 빠져 메마른 상태인 ‘곤경’을 상징하는 괘가 ‘곤괘’이다. 그런데 ‘곤괘’를 풀이한 계사를 보면 놀랍다. ‘곤(困)이 형통[亨]하고 길(吉)하다’는 역설적 논리는 우리 사회가 헬조선, 기울어진 운동장이고, 스카이캐슬의 시대라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고, 서민들은 차라리 IMF 시절이 더 나았다고 불평하는 상황에 궤변 같다. 그러면 괘사에서 “곤은 형통하다. 올바른 대인(大人)이라야 길하고 허물이 없다. 말을 하면 불신을 받을 것이다.”고 하여 ‘형통하다’고 말한 이유는 무엇일까.


 ‘곤괘’의 풀이는 다음과 같다. 곤경에 처했지만 형통할 수 있는 가능성은 많다. 올바르고 곧은 뜻을 굳게 지켜나가야 하지만 편협해서는 안 되니, 포용력 있는 대인의 도량을 발휘해야 길하고, 허물이 없을 수 있다. 불평불만과 변명을 일삼는다면 신뢰가 떨어져 일을 그르친다. [困, 亨, 貞, 大人, 吉, 无咎. 有言不信] 


 「단전(彖傳)」에서 “험난하지만 기뻐서, 곤궁하되 그 형통한 바를 잃어버리지 않으니 오직 군자뿐이다.”고 말한다. 즉 험난한 상태에 처해 몸은 곤궁하지만, 목숨을 바쳐서 중용의 바른 덕을 지키는 군자는 오히려 현재 상황을 발판으로 삼아 이를 극복해 자신의 뜻을 이룬다. 그러나 소인이 곤궁한 데에 처하면 말을 꾸미고 변명을 일삼기 때문에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참고: 한국학중앙연구원)


 바로 마음의 문제이다. 형통한 것은 곤경에서 벗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고난의 상황에서 몸이 힘들어도 마음은 기쁨을 유지하고 있으므로 형통한 것이다. 그러한 기쁨은 어떻게 가능한가? 올바른 뜻을 굳게 지키고 있기[貞]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자기 고집의 절개는 자신의 곤란한 현실을 무시하거나 외면하는 무관심과 편협함은 아니다. 현실과 적절하게 관계하는 균형 감각이다. (참고: 주역과 운명)


 맹자가 「진심장(盡心章)」에서 아래와 같이 말한 것을 고난에 처한 선비가 이를 극복하는 데 마음의 자세를 가다듬는 경구로써 삼았다고 한다. 

 “하늘이 장차 이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괴롭히고 뼈마디가 꺾어지는 고난을 겪게 하며 그 몸을 굶주리게 하고 그 생활은 빈궁에 빠뜨려, 하는 일마다 어지럽게 한다. 이는 그의 마음을 두들겨서 참을성을 길러 주어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일도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지금은 궁핍한 시대다. 그러나 부재와 결핍의 계절을 온몸으로 견딘 나목에 움이 트고 있다. 누구나 곤궁을 형통으로 전환할 군자가 될 순 없다. 한편 곤궁을 견뎌 나가는 마음을 먹으면 누구나 군자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겨울은 봄을 준비하는 시간일 뿐이다. 추사의 ‘세한도’를 음미하거나, 슈베르트의 가곡 ‘겨울 나그네’나 비발디의 ‘사계 중 겨울’을 감상하던 이도 이제는 매화 향기를 맡으며 정지용의 ‘춘설’을 읽고, 요한 슈트라우스의 ‘봄의 왈츠’를 들을 때가 왔다.



<오륙도 신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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